영화·드라마 속 공무원은
‘칼 퇴근, 임금체불 없고 정년 보장, 폭설내리는 주말엔 특근, 취미는 TV보기와 독서, 잡학다식, 재테크는 부동산 경매, 로망은 5급 사무관…’
지난해 개봉영화 ‘나는 공무원이다’ 속 마포구청 환경과 7급 주임의 모습이다. 민원인들의 반말과 술주정, 어불성설형 대갈(大喝)을 평정심 하나로 꿋꿋하게 받아내는 장면에서 실제 많은 자치구 행정직 공무원들이 크게 공감했다는 후문이다.
영화나 TV드라마에서 구청이나 동사무소 공무원, 순경 등은 평범한 소시민을 상징하는 대표 직업이다. 나라의 녹봉을 받는 샐러리맨으로서 무사안일, 복지부동, 영혼없는 정치적 중립성, 융통성 제로(0) 등의 수식을 받는다. 변화와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들이 자의 혹은 타의로 사건에 얽히면서 삶을 반전하면 극적 재미는 배가된다.
‘나는 공무원이다’의 주인공은 잠시 홍대 인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변신한다. 코미디 영화 ‘바르게 살자’(2007년)의 순경은 우연찮게 은행강도단을 소탕해 특진하고, ‘영어완전정복’(2003년)의 동사무소 말단 공무원은 영어학원에서 만난 훈남과의 사랑을 완성한다. 드라마 ‘시티홀’(2009년)에서 지방 소도시 10급 비서는 커피 심부름만 하다가 대통령을 꿈꾸는 천재관료를 만나 시장에까지 오르고, 시정을 훌륭하게 해낸다. 이런 특별할 것 없는 말단 공무원들이 좌충우돌하며 목표와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은 관객과 시청자에겐 동질감과 함께 대리만족감을 준다.
그런가 하면 국정원 요원, 경찰, 소방관, 검사 등 특수직 공무원은 수행하는 직 자체가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어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직업군이다. 직에 덧입혀진 이미지는 다소 차이난다. 흔히 소방 공무원은 살신성인의 정신을 발휘하는 시민의 영웅, 검사는 검은 뒷거래를 하는 비위자의 모습에 가깝다.
현재 상영 중인 재난영화 ‘타워’나 로맨스물 ‘반창꼬’ 속 주인공의 직업은 나란히 소방관이다. ‘타워’ 속 여의도 소방대장은 크리스마스 이브 날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와 보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화재 현장을 달려갔다가 순직하고 만다. ‘반창꼬’ 주인공 역시 인명을 구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실제 낮은 임금, 목숨을 담보로 한 열악한 근무여건에서도 묵묵히 공무를 수행하는 소방관의 삶은 그 자체로 감동 스토리다.
지난해 드라마 ‘추적자’, 영화 ‘도가니’ ‘부러진 화살’ 등 사회성 짙은 화제작에서 검ㆍ경은 비리의 온상처럼 다뤄졌다. 다음 달 초 방송 예정인 SBS ‘돈의 화신’ 역시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 법조계를 배경으로 한 리베이트 커넥션 비리를 소재로 삼는다.
이 같은 극 중 공무원 이미지는 신문과 방송에 순직 소방관과 검찰 비리 관련 뉴스가 부쩍 늘어난 영향 탓도 크다.
최근 경제불황과 젊은층의 취업난은 첩보물 속 국정원 요원의 캐릭터도 바꿔놓았다. ‘7급 공무원’(2009년), ‘개와 늑대의 시간’(2007년) 등 이제껏 첩보물에서 총칼을 자유자재로 쓰거나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춘 여성 요원은 섹시미인의 대명사 격이었다. 그러나 동명영화의 속편 격으로 지난 23일 첫 방송한 MBC 새 드라마 ‘7급 공무원’에선 그런 모습이 온데간데 없다. 여주인공은 국정원 요원이면서 집안에선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생활인으로서 고충과 신입사원으로서의 고민에 빠지는 평범한 ‘직딩녀’다.
얼마 전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이 2년간 간첩활동을 했다가 발각된 영화 같은 사건은 실제 영화적 상상력으로 먼저 재현됐다. 코미디 영화 ‘간첩’에는 젊은 시절에 동사무소 공무원으로 위장해 공작 임무를 한 뒤 은퇴한 남파간첩이 나왔다. 영화, 드라마,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지숙 기자/
jsha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