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다 이순신’이름 논란…TV프로그램‘ 또하나의 창작 작명’

드라마 원제 ‘차칸남자’ ‘닥패’ 한글단체 피소로 자진 변경

과거엔 직설적 표현-최근엔 서정적이고 모호한 제목 선호

런닝맨·무릎팍도사 등 간결한 단어로 외우기 쉬워 대박

KBS2TV 주말극 ‘최고다 이순신’의 이름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방송 2주차에도 시청자게시판에선 ‘성웅 이순신 장군을 희화화했다’ ‘창작자의 자유를 허용해야한다’는 식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18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한 주간 ‘최고다 이순신’의 주인공 이름 및 제목 변경 민원이 20여건 쏟아지자, 19일 열리는 연예오락특위에 먼저 상정해 자문을 받고, 방송심의위에서도 정식 심의할 예정이다.

극중 이순신(아이유 분)에게 ‘독도나 지켜라’ ‘100원짜리’라고 저속한 언어로 비아냥댄 것이 논란을 키웠다. 일본에 수출할 경우 직역 시 ‘최고’라는 뜻의 일본어 ‘사이코우(さいこう)’가 영어 싸이코(psycho)와 발음상 비슷한 점까지 누리꾼은 문제 삼고 있다.

방송은 민족의 주체성 함양과 민족문화의 창조 계승,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공적 책임을 지고 있는데, 드라마 한 편이 이순신 장군에게 루저의 이미지를 덧입혀 다음 세대에 물려질 수도 있음을 일각에선 우려하고 있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드라마 제목 짓기=KBS의 드라마 제목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해 드라마 ‘차칸남자’가 ‘착한남자’로,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가 ‘패밀리’로 각각 변경된 바 있다. 각각 비표준어와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한글단체로부터 피소돼 방송사가 자진변경했다. 드라마제작사 관계자는 “제목 하나 짓기 위해 몇 개월 동안 고민한다”며 “마케팅을 위해 광고주까지 머릿속에 계산해야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래서인지 기획단계에서 제목이 바뀌는 사례도 부쩍 늘었다.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은 ‘삼대째 국수집’에서 간판을 바꿔달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너무 ‘올드하다’는 것. 하지만 ‘국수’란 먹거리로 한정할 경우, 스토리 전개는 물론 광고협찬(PPL)까지 제약받게 되는 속사정이 있다. 지난해 ‘더 킹 투하츠’가 애초 제목 ‘더 킹’에 두 가지 심장을 뜻하는 ‘투하츠’를 붙였더니 협찬주였던 ‘던킨도너츠’를 일부러 연상케 했다고 눈총받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드라마 제목도 유행을 탄다. 한때는 ‘천만번 사랑해’ ‘결혼해 주세요’ 등 직설적 화법이 즐겨 쓰였지만 요즘엔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을 더 좋아한다. 일본의 인기 오피스드라마 ‘파견의 품격’의 한국판인 KBS2 새 월화드라마 ‘직장의 신’의 기획 당시 가제는 ‘돌아와요 미스김’이었다. 극중 이름을 포함시킨 가제는 명확하긴 하지만 어쩐지 촌스럽다. 일일드라마 ‘힘내요 미스터김’이나 2006년 ‘돌아와요 순애씨’를 떠올리게 한다.

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일본 원작 제목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보다 훨씬 서정적이다. 노희경 작가가 배경을 여름에서 겨울로 바꾸고,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의 한 구절(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에서 따왔다. 죽으려고만 드는 시각장애인 오영(송혜교 분)이 오수(조인성 분)를 만나면서 겪는 심경 변화가 제목에서 엿보인다.

MBC 새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九家의 書)’는 언뜻 들으면 알쏭달쏭하다. 한자를 풀어보면 구씨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책. 그 내용이 무엇일지 비밀스럽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드라마는 반인반수의 최강치(이승기 분)가 사람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무협활극으로, 구가의 서는 천 년 동안 구미호 일족에게 내려오는 밀서이자 인간이 되기 위해 백일 동안 지켜야 할 세 가지 금기사항을 담은 언약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교양의 풍취가”=장안의 화제작 ‘아빠! 어디가?’도 좋은 제목이다. 프로그램 콘셉트처럼 아이가 아빠와 함께 손잡고 놀러가는 그림이 단박에 연상된다. 연출자인 김유곤 PD가 작명했다. ‘아빠! 어디가?’의 원래 제목은 ‘즐거운 불편’이었다. 현대문명사회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옛것의 불편함을 즐긴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았지만,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쉽고 가볍게 가자는 애초 기획 취지를 따라 지금처럼 쉬운 제목으로 바꿨다.

다큐예능(다큐멘터리 형식이 가미된 예능), 착한 예능이 뜨면서 예능의 제목에서도 교양의 냄새가 물씬 난다. ‘인간의 조건’ ‘땡큐’ ‘짝’ ‘나혼자 산다’ 등 깊이가 느껴지는 제목은 여느 휴먼 다큐멘터리에 붙여도 좋을 제목들이다.

MBC 예능은 전통적으로 한글 제목을 선호한다.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등은 프로그램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면서, ‘나는 ○○다’란 각종 패러디를 양산하며 제목도 같이 떴다. 반면 SBS는 곧잘 영어와 한글을 섞어 작명한다. ‘런닝맨’ ‘패밀리가 떴다’ ‘X맨’ ‘땡큐’ 등 누구나 알 만한 쉬운 영어로 프로그램의 성격을 잘 드러내 보인다.

예능 제목으론 다섯 글자, 세 글자가 유난히 많은 것도 특징이다. ‘강심장’ ‘런닝맨’ ‘놀러와’ ‘세바퀴’ ‘안녕하세요’ ‘해피투게더’ ‘달빛프린스’ ‘라디오스타’ ‘무릎팍도사’ ‘정글의 법칙’ 등은 간결하면서도 완성된 리듬이 귀에 쏙 들어오는 글자의 조합이다.

권석 MBC 예능국 예능1부장은 “프로그램을 론칭할 땐 시청자에게 빨리 알려지는 게 중요하므로, 제목이 너무 길면 안 된다. 또 제목만 들어도 뭘 하는지 알 만큼 짧고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고 셋, 다섯 글자 수가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권 부장은 “연출자는 프로그램이 잘되지 않아서 방향을 틀어야 할 때를 대비해 두루뭉술한 것도 좋아한다. 예컨대 ‘오늘을 즐겨라’에선 아무거나 다 해도 좋았다. 피할 구멍을 만드는 거다”고 덧붙였다.

한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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