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4회> 총칼 없는 전쟁 34

거성그룹의 랠리 팀이 비행기를 타고 상하이로 떠난 날 밤, 땅거미가 사라지고 온 세상이 어둠에 잠기던 그 무렵… 유민 회장은 집무실에 홀로 남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5개국 관통 랠리대회를 성사시키고, 랠리 카들이 북한 땅을 질주하도록 했으니 큰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그러나…

‘절반의 성공일 뿐이야.’

혼자 남아있는 집무실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마음이 늦가을 벌판처럼 황량해서인가? 음악을 크게 틀어 봐도 마찬가지였고 텔레비전을 켜보아도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일 개최되는 거성식품의 이사회 때문인 모양이었다.

“절반의 성공일 뿐이라고!”

급기야 그는 빈 사무실에 대고 고함을 질러댔다. 랠리대회가 성공리에 개최되었으니 대선주자와의 약속은 일단 마무리 지은 셈이었다. 그러니 베트남 내해에서 권도일을 바닷속으로 빠뜨린 죄는 깨끗이 사면될 테지만….

산 넘어 산이라, 대선주자와의 일이 해결되자마자 전처 신희영과의 재산싸움이 새롭게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아들 유호성이 10%에 달하는 주식의 의결권을 과연 누구에게 위임했을까? 만약 그 주식이 신희영에게 흘러들어간다면 30년 동안 쑤어 온 죽을 개에게 퍼주는 결과나 다름없었다.

‘술과 계집 앞에서 뒤집어지지 않을 놈 있으려고? 제 까짓것들이…’

유민 회장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중이었다. 왠지 불안하긴 했어도 ‘술과 계집 작전’을 벌여놓은 이상 그 10%의 주식은 자기에게 흘러들어올 것이라고 억지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술과 계집 작전’이란? 물어보나 마나, 뻔할 뻔자! 아들 유호성이 10%에 해당하는 유민식품의 주식 의결을 위임했을 만한 사람들을 무작위로 끌어모아 술 먹이고, 분탕질을 시켜 주리라는 전 근대적 회유방식이었다.

‘김상곤 이사, 박인협 이사, 신후철 이사, 위병탁 부장, 피규민 부장, 그리고…’

유민 회장은 손가락을 꼽으며 주식의결을 위임받았을 만한 사람들의 이름을 읊어나갔다. 대략 일곱 명 정도였다. 까짓 것들 쯤이야 술 폭탄으로 초토화시킨 후에 아리따운 아가씨를 옆에 앉혀주기만 하면 해삼처럼 흐물흐물해질 것이 뻔했다.

“여보세요, 송 마담? 그래, 나야. 예약한 대로 준비 잘 해놓았나? 정확히 한 시간 후에 쓸개 빠진 놈들 일곱 마리를 데리고 갈 거야.”

“어머나, 회장님… 일곱 마리가 뭐예요? 일곱 분이겠지요, 호호호!”

유민 회장은 전화기를 통해 속풀이를 했고, 어느덧 ‘유리의 성’ 마담으로 승진한 송유나는 이렇게 여우 짓을 했다. 송유나가 누구냐고? 하긴 어젯밤 일도 기억에 가물가물한 사람들이 많을 테니… 기억을 더듬어볼 만도 하겠다.

2년쯤 전이던가? 새로 사서 개통한 스마트 폰을 뒷주머니에 차고 당당하게 ‘유리의 성’이란 술집으로 쳐들어갔던 유민 회장을 기억하시는지? 그날, 스마트폰의 터치가 잘못되어 통화내용이 그대로 신희영에게 전달되었던 것인데….

안마용 베드 위에 마주 앉아서 왼발을 쭉 뻗고, 오른쪽 발바닥을 마주 댄 채로 카마수트라의 비법에 맞추어 통정하던 장면을 그대로 중계방송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날 안마용 의자에 홀랑 벗고 앉아 상열지사를 벌이던 장본인이 바로 송유나였다. 술 취했을 때 부르던 별칭은 ‘그라스 강’이었을 것이다.

술에 떡이 된 유민 회장과 ‘그리스 강’이 필사의 힘을 다해 육박전을 벌이는 동안 신희영은 내비게이션을 대동하여 ‘유리의 성’으로 돌진했고, 급기야 현장을 덮쳤을 때, 다급해진 유민 회장은 김치냉장고 안에 숨어들었던 것을… 이제는 기억하시려나?

전화통화를 마친 유민 회장은 잠시 쓴 입맛을 다셨다. 그날, 배추김치 포기로 사타구니만을 겨우 가린 채 마누라 신희영 앞에서 벌벌 떨던 기억이 새로웠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회장노릇도 해먹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유리의 성’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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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