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2회> 총칼 없는 전쟁 (32)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심전도와 혈당검사가 특별 추가된 건강진단 소견이 나오던 날, 권도일과 유호성, 그리고 현성애는 드디어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미 세 사람의 출전 신청서와 국제 A급 라이선스는 중국에 머물고 있는 대회 진행자에게 보낸 지 오래였다.

거성그룹의 간판 격인 머신으로서 1974년산 치타가 대대적으로 홍보된 지도 이미 한 달이 넘었다. 동체에 ‘그레이스 켈리’ 여왕의 초상이 그려진 그 머신은 지난 해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었으므로 각 신문 스포츠 면을 도배하다시피 장식하곤 했다.

FIA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경기였지만 거성그룹에서는 FIA의 기본지침에 따라 행정전담요원과 특별지원 팀원을 무려 스무 명이나 배치했다. 그 외에도 선수들의 의료, 해외이동, 숙식 등을 지원하는 총무요원과 랠리 카의 이동, 유지, 보수를 책임지는 기술요원까지 합하면 30명이 넘는 대 인원이 상하이로 파견되었을 것이다. “고비사막을 통과하기가 그렇게도 힘들다면서요?”

“적어도 사흘 밤낮은 모래구덩이 속에서 헤매야 할 겁니다. 닝샤후이족 자치구를 넘어서면서부터 모래바람과 추위에 시달릴 거예요. 그렇지요? 권 전무님?”

현성애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자 유호성이 대뜸 건방부터 떨기 시작했다. 참새가 봉황의 깊은 뜻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재벌2세가 신개념 컨셉트 카인 ‘로열 골드’의 성능 테스트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언론에 보도된 것이 전부인 양 알고 있는 유호성은 기고만장하는 중이었다.

“친링산맥을 넘는 일이 더 힘들 거예요. 특히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타이바이산을 넘으려면 죽기를 각오해야 할 걸요?”

“그까짓 산길쯤이야… 6,000cc 엔진에 500마력이나 되는 치타로는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겁니다. 몬테카를로에서 이미 산길을 달려봤잖아요? 그리고… 아직도 쪽팔리긴 하지만, 흐흐흐! 지난번 말고개에서도 시속 110킬로미터로 쏘는 거 못 보셨습니까? 모래구덩이를 달리는 일이 훨씬 힘겹지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권도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애송이 같으니라고…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친링산맥을 넘으려면 일단 희박한 산소와의 싸움부터 겪어내야만 할 것이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코피가 터지고 두통이 생겨나는 고산지대를 초긴장 상태로 달려야만 한다. 코를 틀어막으면 잇몸 사이로도 피를 흘리게 되는데…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지 못하면 자칫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게 되는 걸 왜 모를까.

“이번 경주에 어벙이 153명, 꺼벙이 153명, 모두 합쳐서 306명이 출전한다면서요? 그 중에서 완주하는 작자가 몇이나 될까요?”

“어벙이, 꺼벙이? 그게 무슨 소립니까? 155대의 머신에 드라이버 155명, 코-드라이버 154명이 출전한다고 들었는데요?”

“어허, 우리 세 명 빼면 모두 어벙이, 혹은 꺼벙이들이지요 뭐. 그런 핫바지들 틈에서 우리가 우승을 못한다면… 말도 안 되지.”

“우리?”

“흐흐! 나, 그리고 현성애 씨! 전무님은 애초에 입상할 목적으로 출전하신 게 아니잖아요? 로열 골드의 내구성을 테스트하려는 뜻으로 출전하는 거 아닙니까?”

착각도 이 정도면 고질병이었다. 그러나 권도일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여 줄 뿐이었다. 아무리 봉황새라고 한들 참새가 제풀에 즐거워하는 것까지 말릴 수는 없었으므로.

고도를 높인 비행기가 구름 속에서 벗어나자 저 아래로 인간세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분진과 소음, 배신과 모략, 험담과 음모로 가득 차 있을 그 세계는… 그러나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눈 좀 붙여야겠어요.”

가운데 끼어 앉아있던 현성애가 권도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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