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이혼은 줄었지만, 개인 사생활 침해 논란…‘이혼숙려제’의 딜레마
이혼숙려제도 도입후 이혼취소 건수 두배나 늘었지만… 협의이혼 절반이상 “고통 연장하는 것이냐” 법원 조정에 반대
“아이를 못 낳으면 대가 끊기는데 그런 여자를 데리고 살아야 하나.”
1977년 부부가 합의를 통해 이혼하려면 판사 앞에서 의사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가족법이 개정되자 유림은 극렬하게 반발했다. 남편 마음대로 쉽게 아내를 버릴 수 있는 길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었다. 가족법 개정을 찬성한 법학자들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려야 했고, 일부에서는 첩을 두는 것을 법제화하라는 요구도 터져나왔다. 아직 아내를 남편 집안의 대를 잇는 씨받이 정도로 치부하던 시절의 풍경이다.
해방 이후 도입된 협의이혼제도는 쉬운 이혼을 통한 ‘기처’를 가능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간단한 신고만으로 이혼이 가능한 일본의 이혼제도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였지만 우리 민법은 일본의 법제를 그대로 따랐다.
시대가 바뀌고 양성평등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이런 문제는 차차 사그라들었다. 협의이혼제도 역시 몇 차례 관련법 개정으로 비로소 제 기능을 하게 됐다. 실질적인 협의이혼은 양성 평등을 강화한 2008년 6월 민법 개정을 통해 가능했다. 개정 민법의 협의이혼제도의 근간은 “4주 뒤에 뵙겠습니다”는 드라마 대사를 상징으로 하는 이혼숙려제다. 이혼 의사가 있더라도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3개월, 없는 경우 1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도장만 찍으면 끝’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바꾼 것이다.

이혼 절차를 까다롭게 해 충동적인 이혼을 방지하고 미성년 자녀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이혼숙려제는 분명 일정 부분 목적 달성에 성공했다. 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2007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13만7000여건의 협의이혼 신청 중 취하된 것은 2만2000여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9년부터는 매해 13만~14만여건의 협의이혼 신청이 접수됐음에도 취하 건수가 4만5000여건으로 두 배나 늘었다.
물론 협의이혼을 신청했다가 취하한 모든 사례가 이혼을 포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면은 있다. 제대로 협의가 되지 않아 재판상 이혼을 신청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상 이혼은 전체 이혼건수의 2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협의이혼에서 재판상 이혼으로 넘어가는 건수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법원은 적어도 ‘홧김 이혼’은 막아낸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협의이혼제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혼을 결심한 부부가 숙려기간에 내실 있는 숙려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협의이혼제도의 운용 실태 및 개선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이혼숙려 기간 중 상담을 받은 것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8.3%, 미성년 자녀가 없는 경우 3.5%에 불과했다.
외국은 협의이혼을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해도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는 상당 기간의 상담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 주는 미성년 자녀가 있거나 배우자 한쪽이 이혼을 거부할 경우 법원은 3개월 이내에서 이혼 절차를 중단하고 상담가와 상담할 것을 지시한다. 협의이혼이란 게 없이 법원의 판결을 통해서만 이혼이 가능한 독일에서는, 부부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이혼소송 절차에서 자녀의 양육과 면접 교섭의 문제 등과 관련해 상담을 받아야 한다.
한국 법원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다. 최근 부산가정법원은 미성년 자녀를 둔 부부가 협의이혼을 할 때는 의무적으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부모 교육과 가족캠프, 집단상담 등 후견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하는 ‘협의이혼 전 의무상담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를 둔 협의이혼 당사자들은 ‘자녀양육안내’를 들어야만 이혼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방침을 만들어 지난해 11월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협의이혼 절차가 점점 까다로워지는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는 이혼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세간의 시선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한편, 결혼에 관련한 개인의 사생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정당하냐고 질문한다. 결혼이 자유라면 이혼 역시 자유이고, 이혼에 숙려가 필요하다면 결혼에도 숙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가정’을 지켜야 할 대상으로 상정했던 선입견을 흔들어 놓는다.
2011년 협의이혼 절차를 거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숙려기간을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고 답했던 것은, 현실 속 부부들 역시 이러한 주장에 많이 공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혼을 결심하기 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던 부부에게는 혼인 기간 자체가 이혼숙려기간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법원의 만류는 고통을 연장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한국여성의전화 신상희 인권정책팀장은 “이혼 포기를 종용하는 국가 정책은 이혼한 사람들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편견을 강화한다”며 “설령 부부가 숙려기간 중에 이혼을 포기했더라도 기존에 안고 있던 문제는 여전히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여지껏 이혼을 하려는 부부에게 상담을 의무화하지 못한 이유 중에는 이혼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전통적인 가족 관념과 근대적인 자유 결혼의 이념이 충돌하는 한 협의이혼제도는 언제나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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