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리위안은 시진핑 시대 중국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중국인들은 그가 남편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을 본 후 “최고지도자도 우리처럼 가정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고 말한다.
중국의 역대 ‘제일부인(第一夫人·퍼스트레이디)’ 가운데 중국인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여성은 류사오치(劉少奇) 전 국가주석의 부인 왕광메이(王光美·1921~2006)일 것이다.
‘왕광메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1967년 4월 10일 칭화(淸華)대학 교정에서 열렸던 비판대회 장면이다. 이날 새벽 칭화대 홍위병들은 중난하이(中南海)에 있던 류샤오치의 자택으로 쳐들어가 왕광메이를 칭화대학으로 끌고 갔다.
홍위병들은 그에게 강제로 치파오(旗袍·전통 의상)와 하이힐을 신기고 영국 귀족처럼 챙 넓은 밀짚모자를 씌었다. 이어 탁구공으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왕광메이는 이런 복장으로 나무막대에 묶인 채 장장 16시간 동안 갖은 모욕을 받았다.
퍼스트레이디로서 지난 1963년 남편과 함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를 순방할 때 착용했던 하얀색 치파오와 진주목걸이, 모자가 ‘부르주아 분자의 확실한 증거’가 되면서 엄청난 수모를 당한 것이다.
왕광메이는 톈진(天津) 거부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알고 지내던 한 공산당원의 부탁으로 영어통역을 맡게 된 것이 운명을 바꿔놓았다. 이후 옌안(延安)으로 들어간 그는 그곳에서 류샤오치와 처음 만나 1948년 결혼했다. 그때 왕은 27세, 류는 50세였다.
왕광메이는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이후 처음으로 해외방문을 수행한 ‘제일부인’이었다. 1959년 남편이 국가주석에 오른 뒤 해외방문 때마다 항상 동행했던 그는 미모와 유창한 영어실력, 세련된 패션감각 덕분에 가는 곳마다 인기를 모았다. 남편의 외교활동을 도우면서 ‘치파오 외교’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그러나 류가 ‘주자파(走資派)의 수괴’이자 ‘중국의 흐루쇼프’로 낙인찍히면서 엄청난 시련이 시작됐다. 그를 질투했던 또 다른 ‘제일부인’인 마오쩌둥(毛澤東)의 처 장칭(江靑)은 ‘왕광메이 죽이기’에 나섰다. 왕광메이는 세 차례의 인민재판을 받아야 했으며, 1978년 12월 출옥할 때까지 12년간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러시아-아프리카로 이어진 외국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특히 시 주석은 이번에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을 동반해 세계적인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베이징 중앙음악학원을 졸업한 후 인민해방군 가수로 활동했던 펑리위안은 이번 순방에서 남편 못지않게 뉴스를 몰고다녔다. 순방이 끝나고 나서도 펑리위안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고 있다.
펑리위안은 시진핑 시대 중국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중국인들은 그가 남편의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장면을 본 후 “최고지도자도 우리처럼 가정이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고 말한다. 처참했던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왕광메이와 정치적 전횡으로 피바람을 몰고왔던 장칭의 영향으로 장기간 중국에서 사라졌던 ‘서구식 퍼스트레이디’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G2’라는 중국의 높아진 국가위상에 걸맞게 펑 여사가 ‘진정한 제일부인’이 되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