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0회> 바람에 맞서는 법 58

라제니 골프장에 도착해서 락카를 배정받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곽승철은 무려 심호흡을 100여 차례나 계속해야만 했다. 그는 적어도 북한에서만큼은 상위권에 속하는 골프 실력자였다. 북한에서도 외교관 등을 대상으로 골프교습을 실시하곤 했는데, 그는 여러 경로를 통해 실전교습을 받은 경력이 있던 터였다.

옷을 갈아입은 후에도 그는 한동안 벤치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싱글 수준의 선수들이 눈을 지그시 감고 이미지 라운드를 하는… 바로 그 자세였지만, 곽승철은 내심 조마조마할 따름이었다.

‘내레… 환장 하갔구만.’

그가 앉아있는 벤치 맞은편에 걸려있는 현수막에는 붉은 글씨로 주의사항이 명기되어 있었다. 불어와 영어로 적혀있는 그 내용을 번역하면 대충 다음과 같았다.

1, 우선 모든 선수들은 알몸이 되어야만 합니다. 단, 모자는 착용 가능합니다.

2, 자신과 타인의 몸을 존중하고 부끄러움을 느껴서는 안 됩니다.

3, 골프용품 이외의 물품은 반입 금지입니다.

4, 사진촬영은 허용되지 않으며, 성적인 행동은 추방대상입니다.

5, 코스에 들어가기 전에 청결을 위해 반드시 샤워를 해야 합니다.

곽승철은 어째서 100여 차례나 심호흡을 해야 했을까? 주의사항 2번을 읽고 나서 느낀 문화적인 충격 때문이었다. 뭐라고? 타인의 몸을 존중하라고? 게다가 부끄러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고?

그가 혼잣말로 지껄였듯이… 환장할 노릇이었다. 1인용 카트에 골프백을 싣고 나체로 당당히 걸어가는 서양 아가씨들을 볼 때마다 그의 지겟작대기는 본때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도 풍선효과에 해당하는지? 심호흡을 들이쉴 때마다 그의 아랫도리는 불끈불끈! 어디에 가두거나 숨겨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점잖게 사타구니 위에 모자를 얹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곽 동무도 모자를 얹어놓았습네다 그려. 허허허! 나도 조금 전까지 모자로 가려놓고 있었디요. 쪼그린 채 이를 악물고 천자문을 두 번이나 외웠지 뭡네까?”

“공지호 동무! 같이 갑세다. 잠시 옆에 좀 앉으시라요. 내레… 죽갔시오.”

“눈은 호사하는데, 몸은 괴롭단 말이오. 이제 조금 뒤엔 연예단 에미나이들과 공알치기를 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어이 하갔소?”

“그땐… 한쪽 손으로 공알을 치는 수밖에 없지 않갔습네까?”

“옳다, 그거로군. 한쪽 손으로 슬며시 아래를 움켜잡고, 나머지 한쪽 손으로 채를 휘두르면 되갔군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지만… 별다른 뾰족한 방법도 없소. 그나마 모자라도 가지고 입장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맙습네까?”

프랑스 아키텐 주 보르도 시 외곽에 있는 라제니 골프코스에 내리쪼이는 햇살은 유난히 투명했다. 18만평, 총 60만제곱미터에 이르는 초원 위에 겨우 여섯 홀이 갖춰져 있는 미니 코스지만, 자연과 일심동체로 어우러질 수 있는 마지막 낙원인 셈이다.

하지만 곽승철과 공지호는 그 천혜의 낙원에서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괴로움과 기쁨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더니… 사방천지가 기쁨으로 출렁이는데 그 기쁨으로 인해 괴로움을 맛보는 중이었다.

벌써 티오프 시간인가? 첫 번째 홀로 향하는 길목에 한 떼의 아가씨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평양 연예단에 속해있는 그 에미나이들이었는데… 웬걸, 그 여성동무들은 치렁치렁하게 풀어낸 머리칼로 저마다 젖가슴을 가린 채 자연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패션쇼처럼 모자를 한 손에 들고 요령껏 하체를 가리며 걸어오는 본새가 오히려 우아할 지경이었다.

“어쩌면 저럴 수 있소? 전혀 틈이 안 보입네다, 그려.”

연예단 출신답게 그녀들은, 부채춤을 추듯이 우아하게… 커다란 모자로 치부를 가린 채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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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