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민상식 기자]A(49) 씨는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에서 어린이집 3곳을 운영하는 어린이집 원장입니다. A 씨는 누구보다 바른 성품을 갖고 있어야 할 사람이지만 수년간 아이들 먹거리를 이용해 이득을 챙겨왔습니다.
청과물 시장에서 팔리는 배추에서 떨어져나온 시래기를 싸게 사들여 아이들에게 먹였습니다. 시래기 운반도 아이들에게 시켰습니다. 아이들에게 식자재를 1층부터 4층 조리실까지 나르도록 했습니다.
학부모들이 항의하면 ‘운동효과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항의하는 조리사는 해고하고, 어린이집연합회 블랙리스트에 올려 재취업을 막기까지 했습니다.
또 미국산 쌀이나 중국산 김치는 원산지 표시를 국내산으로 위조했고, 학부모들에게 유기농이라고 속여 매달 최고 6만원까지 ‘유기농비’를 추가로 받아내기까지 했습니다. A 씨는 이런 방법으로 3년간 국고보조금 7억3000여만원을 횡령했습니다.
결국 A 씨는 지난 5월께 경찰의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A 씨의 태도는 당당했습니다.
A 씨는 ‘자신은 결백하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네 살짜리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 부모의 서명을 받아오게 했습니다.
이런 비리 원장들의 태도를 보며 당시 수사를 했던 경찰들은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경찰들은 공공연히 ‘A 씨 등 비리 원장들의 죄질이 아주 나쁘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지난 5월께 국고보조금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어린이집 원장은 A 씨를 포함해 모두 55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친척 등을 거짓으로 보육교사로 등록해 보조금을 받거나, 고용하지 않은 보육도우미를 채용한 것처럼 속여 돈을 타냈습니다. 또 개인적인 술자리에서 공금을 쓰고 나서 보육교사와 회식했다고 영수증을 처리하는 수법 등으로 공금을 횡령하기도 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경찰 수사를 받는 어린이집 원장들의 태도였습니다.
당시 입건된 원장들은 한결같이 “벌금 500만원만 내면 되지 않냐”면서 당당한 태도를 보여 경찰들을 당황케 했습니다. 어떻게 비리 원장들이 이토록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걸까요. 현재 어린이집 횡령 등 법규 위반 행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어린이집 지도ㆍ점검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보조금 부정수령이나 유용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보육료 부정수납에 대해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 원장들은 ‘걸려도 500만원만 내면 된다’는 생각에 너나 할 것 없이 비도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같은 상황을 파악한 송파경찰서 당담 형사들은 A 씨에 대한 구속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당시 입건된 어린이집은 ‘빙산의 일각’이었고, 전국의 비리 원장들에게 일종의 ‘경고’를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경찰은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에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세 차례나 기각했습니다. 검찰은 “A 씨 은행계좌 한 곳에 개인 돈, 학부모 돈이 혼재돼 있어 범죄혐의 입증의 상당성이 부족하다”며 경찰이 A 씨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보완수사를 지시했습니다.
경찰은 이후 보완수사를 통해 영장을 네 차례나 다시 청구했고, 입건된 지 넉달이 지난 지난달 28일에야 A 씨에 대한 구속 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이는 국고를 횡령한 어린이집 원장에 대한 첫 구속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A 씨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던 학부모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한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4개월 동안 길게 싸워온 결과입니다. 정의가 이기는 세상이 보이는 것 같아 기쁩니다.”
이달 9일에는 전남지방경찰청이 국고보조금 3억7000만원을 빼돌린 전남 화순군 소재 모 어린이집 원장 B(40) 씨를 구속하며, 어린이집 비리 엄정 처벌방침에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어린이집 비리 수사를 이끈 경찰관 C 씨는 “어린이집 관리ㆍ감독의 책임이 있는 담당구청이 현재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면서 “관리ㆍ단속 등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할때”라고 지적했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전국 어린이집 4만3000여곳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700여명으로, 공무원 1명당 60여곳의 어린이집을 감독하고 있습니다. 특히 담당인력 대부분은 지도ㆍ점검 업무와 함께 어린이집 인가 및 보조금 지급 관련 업무 등 다른 업무도 병행하고 있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C 씨는 “보조금을 부정수령한 어린이집에 대해 그동안의 미온적인 처리에서 벗어나 관련 법에 의거해 보조금 교부를 중단하고, 강제 징수하는 등 엄정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문제가 있는 어린이집은 당장 문을 닫게 하고 다시는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동심을 멍들게 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잔혹한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맘 편하게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