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4회> 감추어진 승부 78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머나먼 이국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데, 그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 사기꾼도 아니라는데… 당장 짐 보따리를 싸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을까?

‘이럴 때 남편이 곁에 있다면 오죽 좋을까….’

신희영은 티베트의 고원도시 ‘라사’로 향하기 위해 트렁크에 짐정리를 하면서 이렇게 투덜댔다. 하지만…

‘까짓 거, 괜찮아. 닭 대신 꿩이 있는데 뭘.’

곧 이렇게 생각을 바꿔먹었다. 이를 테면 입원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장거리여행을 떠나면서도 미남모델 박박진진과 동행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말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어쩌고저쩌고…는 이미 구시대 말씀, 여자가 남자를 찍으면… 찍힌 놈은 지옥까지라도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요즘 세상논리였다.

남의 이목을 피해 비행기나 탈까?
남의 이목을 피해 비행기나 탈까?

박박진진이 상체를 벗고, 식스 팩을 자랑하는 CF광고가 방영되면서부터 HY 훌 푸드의 매출은 훌쩍 뛰어올랐다. 도대체 식품회사와 옷 벗은 모델이 어떤 연관관계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지는 몰라도 매출그래프가 쭉쭉 뻗어 올라가는 걸 어쩌랴?

“이만큼 매출 오른 게 다 박박진진 씨 덕분이에요. 자, 받아요. 특별 상여금!”

“아이고, 감사합니다.”

“새로 패션사업부를 신설한 것도 박박진진 씨 덕분이에요. 자, 또 받아요.”

“아이고, 또다시 감사합니다.”

대충 둘 사이의 관계는 이렇게 변해 있었다. 매출이 쭉쭉 오르니 특별상여금을 주고, 받고… 그 과정에 신뢰가 생겨 마음도 주고, 받고… 마음 주니 정도 주고, 받고… 정을 주고받다 보니, 신중현이 작사 작곡하고, 김추자가 노래한 ‘님은 먼 곳에’의 노랫말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아니지, 한 수 더 떠서 몸도… 주고받는 관계였지.

하여간 박박진진을 내세워 무작정 옷부터 벗겨 CF 광고를 찍고, 궁한 김에 ‘모피를 벗어 던지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는데… 그 콘셉트가 먹혀들어 매출이 펑펑 오르니 어리둥절하면서도 신날 수밖에.

그 결과 HY 훌 푸드에는 뜬금없이 ‘패션사업부’가 생겨났고, 덕택에 박박진진은 패션사업부장으로 등극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공식적으로, 신희영 회장은 패션사업부장과 함께 아들을 문병하기 위해 티베트 ‘라사’로 출발했다. 하지만 속을 뒤집어 보면, 아들 문병을 빙자해서 젊고 잘생긴 정부와 밀월여행을 떠난 것과 다름없었다. 회사 직원들의 이목을 피하기엔 더없이 훌륭한 명분이었다.

신희영과 박박진진을 태운 비행기가 티베트의 ‘공가공항’에 착륙한 시각은 아침 11시께였다. 공가공항은 이미 그 고도가 해발 3600미터에 이르는 곳 아니던가. 트랩을 통해 걸어 내려서 곧바로 시골 대합실만이나 한 공항 건물로 들어서게 되어 있었는데, 신희영은 트랩을 내려서면서부터 벌써 입술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회장님, 입술에 바른 립스틱이 싸구려인가요? 어째서 입술이 파랗게 변했지요?”

무식한 건지, 장난 놀자는 건지… 박박진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렇게 물었다.

“박박 부장은 고소증세도 몰라? 하이 얼티튜드 시크네스! 고도가 높으면 산소에 피를 공급하는 압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증상이라고. 아이고, 더 이상 말 시키지 말아요. 어디 가서 좀 쉬어야겠어.”

“당장 쉬어야지요. 아무렴요.”

박박진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쉰다고? 색골 회장님께서 정말로 쉬자는 걸까? 박박진진은 여행안내 책자를 뒤져 미리 예약된 선라이즈 호텔의 등급을 확인했다. 그 호텔은 라사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1급 시설이었다. 어쩌면 익사이팅 샤워시설이 갖추어져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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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