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협 안쪽서 원유 싣고 밖에서 환적
한 차례 운항에 최대 4000만달러
中행 VLCC 하루 용선료 120만달러
선원 월급 2~3배·1년치 보너스까지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이란의 군사적 위협과 잇단 상선 공격에도 걸프 산유국들이 수백억원을 들여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고위험 ‘셔틀 운항’을 이어가고 있다. 해협 안쪽에서 원유를 실은 뒤 바깥에서 다른 유조선에 다시 옮겨 싣는 방식이다. 한 차례 운항에 최대 4000만달러(약 537억원)가 들지만 원유 수출길이 막히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산유국들은 초대형 유조선(VLCC)을 호르무즈 해협 안쪽으로 보내 원유를 실은 뒤 해협 밖에 대기하는 다른 선박에 옮겨 싣는 방식으로 수출을 이어가고 있다.
미·이란 전쟁 이후 아시아 원유 구매자들이 자국 선박을 위험 지역인 걸프 안쪽까지 보내는 것을 꺼리면서 등장한 방식이다. 산유국 측 선박이 위험 구간을 오가는 ‘셔틀’ 역할을 맡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해역에서 수출용 유조선으로 원유를 넘겨주는 셈이다.
대가는 막대하다. 이 같은 셔틀 운항에 드는 비용은 한 차례에 3000만~4000만달러로 추산된다. 보험료를 제외하고도 원유 1배럴당 15~20달러의 추가 비용이 붙는다.
호르무즈를 오가는 유조선 운임도 폭등했다. 걸프 지역에서 중국으로 원유를 운송하는 VLCC의 하루 용선료는 전쟁 직전 23만1400달러 수준에서 지난달 말 120만달러를 넘어섰다. 전쟁 전의 5배가 넘는다.
위험을 감수하고 배에 오르는 선원들에게도 파격적인 보상이 돌아가고 있다. 인도와 필리핀, 중국 등에서 온 선원들은 평소 월급의 2~3배를 받고 있다. 한 선원 고용업체는 왕복 항해를 마치면 최대 2만5000달러(약 3400만원)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했다. 일부 기관원에게는 1년치 임금을 웃도는 액수다.
해운 중개업체 E.A.깁슨의 리처드 매슈스 이사는 “현재 선주들이 벌어들이는 수백만달러에 비하면 선원들에게 지급하는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걸프 산유국들이 막대한 비용에도 셔틀 운항에 의존하는 데는 호르무즈를 우회할 수 있는 육상 수송망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우회로인 사우디아라비아 동서 송유관은 하루 최대 700만배럴을 수송할 수 있지만 최근 드론 공격으로 가동에 차질을 빚었다. 일부 수출이 재개됐지만 운송 용량에 한계가 있어 사우디가 당분간 셔틀 운항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르무즈를 직접 통과하는 선박의 항해는 사실상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한다. 선박들은 야간에 창문을 닫고 조명을 모두 끈 채 움직인다. 항해 도중 몇 시간씩 위성항법시스템(GPS) 신호가 끊기면 레이더를 이용해 주변 섬과 곶까지의 각도와 거리를 계산해 위치를 파악한다.
실제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이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선박 7척이 공격을 받았다. 최근 2주로 범위를 넓히면 공격받은 상선은 9척으로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선원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그럼에도 셔틀 운항이 이어지는 것은 세계 최대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유국 입장에서는 수백억원의 추가 운송비와 급등한 보험료·선원 인건비를 부담하더라도 수출을 중단하는 것보다 원유를 계속 내보내는 편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호르무즈 해협이 열려 있더라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원유가 오가는 것은 아닌 셈이다. 해협 안팎에서 원유를 다시 옮겨 싣고,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운임과 임금을 지급하는 고비용 수송망이 걸프 지역의 원유 수출을 떠받치고 있다.
sj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