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 40년만에 방송서 발언
홍콩을 대표하는 원조 액션 스타 리샤오룽(李小龍·오른쪽).
그는 1973년 7월 20일 밤 내연녀인 딩페이의 아파트에서 사망했다. 당시 33세. 그의 사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사망한 지 40년. 그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했던 딩페이가 최근 홍콩 언론에 출연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방송에서 “당시 내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건강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녀에 따르면 리샤오룽이 사망한 날 저녁 영화사 사장인 저우원화이(鄒文懷)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영화 ‘사망유희’ 대본을 갖고 얘기를 나눴다. 그날 밤 리샤오룽이 두통을 호소하자 진통제를 먹였는데, 이를 먹고 잠든 후 그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딩페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구급차가 아닌 저우원화이를 불렀다. 유부남이었던 리샤오룽과의 불륜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살인자라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사망 당일 복용한 진통제가 부작용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음에도 딩페이가 리에게 흥분제를 먹였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유부남을 유혹한 꽃뱀이라는 손가락질을 면하기 힘들었다.
이 소문에 대해 그녀는 “흥분제를 먹인 적이 없고, 두통약은 가족이 늘 복용하던 평범한 약”이었다고 털어놨다.
또 사망 당시 리샤오룽이 딩페이의 집이 아닌 아내가 있는 자신의 집에서 죽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것과 관련해 딩페이는 “저우원화이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알아서 했기 때문에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딩페이는 1960~70년대 대만에서 배우로 활동했으며 섹시한 이미지로 어필했었다. 하지만 리샤오룽이 사망한 후 얼마 있다 연예계를 은퇴하고 독실한 불교 신자로 살며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갑자기 언론에 당시 상황을 밝히게 된 것과 관련해 “딸의 권유 때문”이라면서 “세상의 오해에 당당히 맞서라고 말해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리샤오룽은 194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미국 텔레비전의 단역배우로 일하다가 1971년 ‘당산대형’에 출연하면서 일약 액션영화의 스타가 되었다. 쌍절곤이라는 무기가 처음으로 등장한 ‘정무문’은 그의 최고 히트작이었다.
한희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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