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9> 감추어진 승부 (73)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불과 800m 전방에서 강유리가 세계적인 갑부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퍼포먼스를 벌이는 중이었지만… 유호성은 머신의 앞 유리창이 반이나 깨진 틈을 타고 밀려들어 온 모래 속에 어깨까지 파묻힌 채 까마득히 정신을 잃고 있었다.
유호성은 구호용 헬리콥터의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은 말짱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더라는 게 문제였다. 원래 복어 독과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진 신경 독의 특성이 그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거 왜 이래? 어째서 손발을 움직일 수 없을까?’
그 뿐이 아니었다. 혀가 굳어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나마 공기에 희석된 채로 독가스를 흡입했기 때문에 설 중독 된 상태이길 망정이지, 하마터면 호흡중추까지 마비되어 불귀의 객이 될 뻔 했다는 걸 그는 모르고 있었다.
‘어쭈구리?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네?’
이런 상태에서 구호요원들이 들이닥쳤다는 말이다.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가 멈추자 한바탕 몰아치던 모래바람도 잔잔해졌다. 빨간색 몸통에 녹십자를 그린 헬기 출입문이 열리자 흰 가운을 입은 구호요원 서너 명이 급히 뛰어내렸다.
“어? 아직 살아있군. 어디 다친 데 없소?”
외국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구호요원들은 이렇게 떠들어 대는 모양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유호성의 눈까풀을 뒤집어 까며 건강상태를 확인했고, 나머지 요원들은 모래를 훑어내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무슨 꼴이지? 아이고 망측해라!”
구호요원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이렇게 떠들었을 것이다. 왜냐고? 모래를 훑어내자 유호성은 물론이고, 그의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현성애의 꼴이 드러났는데… 그 꼴이 가관이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유호성도 눈알을 돌려 옆자리를 확인했다. 아직 목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송장과 다름없었지만 그나마 눈알이라도 옆으로 흘길 수 있었으므로 산송장 취급이나마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쿠, 얘가 왜 이러고 있을까? 오메, 내 꼴은 또 어째서 이렇지?’
가자미눈을 뜨고도 볼 것은 다 볼 수 있었다. 이런! 옆자리에서 코스 안내를 해주고 있었을 코-드라이버 현성애는 드라이빙 슈트 윗도리를 허리까지 걷어 내린 상태였다. 그녀는 원래부터 브래지어 착용하길 싫어했던지라… 젖가슴을 홀랑 드러낸 나신으로 유호성의 옆에 착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유호성 본인도 상체를 훌렁 걷어 내리고 알몸으로 있더라는 말인데… 땀에 젖은 몸뚱이에 모래를 끼얹은 형국이었으니 그 드러난 모습이 마치 모래조각으로 설치미술 판을 벌여놓은 것과 같았다.
‘난 운전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고요. 어째서 이런 꼴로 자고 있었는지 나도 모른다니까?’
유호성은 이렇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신경 독에 마비되어 혀도 굳어있고, 성대도 굳어있었기 때문에 그 말이 목구멍을 통해 구호요원에게 전달될 리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유호성은 뻔뻔스럽도록 눈알만 대록대록 굴리고 있는 건달이었다.
사실을 규명해보자면 이렇다. 본인도 모르게 독가스가 유입되고, 신경이 마비되기 시작하자 몸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목을 쥐어뜯다가 드라이빙 슈트의 지퍼를 내렸을 것이고, 역시 본능적으로 윗도리를 걷어 내렸을 것이다. 그래도 상태가 이상하니 둘이 바싹 끌어안았을 수밖에. 이런 과정이 불과 5~6초 사이에 벌어졌을 것이다.
“이런, 양아치들 같으니… 얼마나 좋았으면 랠리경기 도중에 유사성행위를 해?”
“참견하지 맙시다. 살아있으면 됐지. 저긴 또 뭐야? 저리로 가 봅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요원들은 즉시 모리타니아 군인들이 쓰러져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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