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봉사 공로…뇌성마비복지회 표창 최집선씨

20년간 매일 복지회 오가며 뒷바라지 아들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게 소원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아들이 ‘엄마 써’라며 월급 통장을 내밀었어요. 아들이 태어나고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번 돈이었어요. 아들을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최집선(67ㆍ오른쪽) 씨는 3년 전 아들 정희영(44ㆍ왼쪽) 씨가 월급 통장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안 아프고, 안 넘어지고,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살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던 아들이 엄마에게 70여만원이 찍힌 월급 통장을 내민 순간이었다.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인 정 씨가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회 ‘꿈을 일구는 마을’ 공방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데는 어머니 최 씨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여년 동안 매일같이, 절룩거리는 희영 씨를 데리고 복지회를 오가며 뒷바라지를 했다는 최 씨. 간암 수술을 받은 남편과 본인도 관절염으로 수술까지 했음에도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이어 나갔다. 최 씨는 장애인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26일 한국뇌성마비복지회에서 주는 표창을 받기도 했다.

“제게 너무 과분한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제 인생이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희영이는 밥도 스스로 먹을 수 있고, 혼자서 걸어다닐 수도 있거든요. 수저도 혼자 들지 못하는 중증환자가 많아요. 그런 환자의 부모에 비하면 제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 씨는 아들이 몸이 아픈 것을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들을 가졌을 때, 그리고 갓난아기일 때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아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지 않았으리라는 자책감이었다. 7개월이 된 희영 씨는 자주 경기를 하며 까무러쳤다. 어머니 최 씨는 좋다는 한의원을 수소문해 침을 맞혔지만 차도가 없었다. 결국 희영 씨는 두 돌이 되던 해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희영 씨의 대뇌가 이미 망가졌다고 했다.

“을지로 극장 앞에서 장사를 하며 가진 아들이었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좋은 것 못 먹고, 애를 가진 상태에서도 힘들게 일했어요. 저 때문에 아들이 저렇게 됐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직도 그 자책감이 없어지지 않아요. 저의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씨에게는 마지막으로 소원이 하나 있다. 아들과 남편보다 딱 하루를 더 사는 것이다.

“제가 없어도 아이가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지만 아직 여건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단 하루라도 희영이보다 오래 사는 것이 제 마지막 바람이에요.”

박병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