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2> 저 높은 곳을 향하여 (3)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거 보라우요. 남반부 재벌 동무들이 얼마나 빤질거리는지 이제야 알갔소? 우리가 줄을 잘 못 선 거외다. 애초에 6사단장 쪽에 줄을 서야 옳았단 말이디요.”
“내레 이럴 줄 알았습네까? 이게 다 도형철 동무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니갔습네까? 꼴푸의 꼴 자도 모르는 우리들을 꼬셔서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게 도형철이란 말이디요. 간나위 새끼 같으니라고!”
인민무력부 공지호 부부장과 당 중앙위원회 곽승철 위원은 양각도 호텔 외국인 전용식당에서 산덕산 생수 두 병과 냉면 두 그릇을 시켜놓고 마주앉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들은 평양 시내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수돗물 대신에 산덕산 생수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투명한 비닐 병에 담긴 그 물을 유리컵에 따라 마시는 것만으로도 상류층 인사로서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촌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그들은 이미 하이네켄 맥주 두 병과 러시아 산 초콜릿 한 봉투를 디저트로 주문해 놓은 상태였다. 평양냉면과 산덕산 생수의 조합도 우스웠지만, 냉면과 하이네켄 맥주의 조합은 더욱 꼴불견이었다. 게다가 기껏 골라 주문한 것이 러시아 산 초콜릿이라니.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늘씬한 생수병과 하이네켄 상표, 그리고 러시아산 초콜릿을 휘감고 있는 갈색 포장지였다. 이를테면 그 조합 자체가 그들의 지위를 한껏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배경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골프에 미쳐서 도형철 편으로 줄을 잘 못 서는 바람에 당 서열이 왕창 뒤로 밀려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열불이 뻗쳐있던 중이었다. 속에서 열불이 뻗치니 얼음이 서걱대는 시원한 냉면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 할 판이었다.
“이제 서양의 속도경주 차들이 우리 땅으로 넘어올 날이 사흘 밖에 남지 않았소, 위원장 동지께서도 그날을 학수고대하고 계시다는 말을 들었디요. 고렇게 되면 눈엣가시 같은 저쪽 놈들이 득세할 거 아니갔소? 그런데도 도형철이 큰소리치던 꼴푸장 건립에 관한 소식은 깜깜합네다. 미치갔시오, 증말.”
“부부장 동무, 너무 열 받지 마시라요. 그러다가 뒷머리 잡고 쓰러지면 큰일 납네다. 화 날 땐 불란서 라제니 꼴푸장에서 잘 빠진 에미나이들과 홀랑 벗고 1벌 타격대로 향하던 모습을 상상하시라우요. 거 참… 아직도 눈에 삼삼 하디요?”
“허허, 그 모습이야 어찌 잊을 수 있갔습네까? 우리 공화국 캐디들은 모두 김일성 종합대학에 다니는 여학생이라던데… 그 에미나이들도 모두 벗겨놓으면 꽤 쓸만하갔디요?”
“위원장 동지께서 하명만 하시면 그런 세상이 오기도 하갔디요. 어쨌거나 남조선 거성 재벌에서 꼴푸장 건립비용 대주길 거절했다는 게 확실한 이상, 우리도 무슨 수를 써서든지 속도 차 경주대회를 훼방 놀아야 하지 않갔습네까?”
“그러게 말이외다. 곽 위원께서 휘하에 부리는 교도대를 은근슬쩍 풀어서… 속도차가 들어오는 길목을 막아버리면 안 될까요? 예를 들면, 국경을 통과하는 길목에 쇠못을 잔뜩 뿌려놓는다든지…”
“아오지에 가려면 호랑이 불알인들 못 잡겠소?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는 집어 치웁세다. 돌아가신 김정일 위원장은 세계 역사상 제일 적은 타수로 꼴푸를 쳤다던데, 어째서 꼴푸 활성화엔 실패 했나 모르갔소. 지난 94년에 아마 38 언더파를 치셨다고 하디요?”
“첫 홀에서 이글, 그 이후 홀인원을 열한 개나 치셨답네다.”
“위원장 동무의 그 경이로운 꼴푸 솜씨를 길이 받들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나서서 꼴푸를 활성화 시켜야만 합네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조선 거성 재벌의 돈을 기필코 얻어 와야 하오. 그러니 도형철을 더욱 조져야 합네다. 아직 늦지 않았소.”
“그렇습네다. 당장 도형철을 이리로 불러 오갔습네다. 불러서 닦달 좀 해야지 이거야 원!”
마침 주문한 냉면 두 그릇과 하이네켄 맥주가 나왔지만 공지호 부부장은 주머니를 뒤져 손 전화기부터 꺼내들었다. 며칠 전에 위원장 동지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라 테두리에 황금 색 용의 문양이 새겨진 손 전화기였다. 그는 에헴, 헛기침을 하고 폼 나게 도형철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폼 나는 상류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도형철부터 다잡아야만 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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