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不通)’, ‘불신(不信)’의 시대, 대중문화는 권력 대탐사에 나섰다. 출발점은 각기 다르다. 예능 프로그램이 결과론적 접근이었다면, 다큐멘터리에선 본질을 탐구하는 역발상을 꾀했다.
시대를 초월해 조선의 신분사회로 돌아간 ‘무한도전(MBC)’ 멤버들은 지난 16일 방송분에서 시공을 오가는 추격전을 벌였다. 이날 ‘왕게임’의 기본은 계급사회에 터전을 둔 일종의 ‘권력 쟁탈전’이었다. 절대권력이 군림하는 왕정에서 멤버들은 왕부터 망나니에이르기까지 전계층을 몸소 살았다.
같은 날 3시간 후 정치인들은 아시아와 유럽 권력의 각축장인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으로 대장정을 떠났다. SBS 창사특집 5부작 다큐멘터리 ‘최후의 권력’ 1, 2부인 ‘7인의 빅맨’이다. 16, 17일 양일간 방송된 ‘7인의 빅맨’에서 정치인(금태섭 박형준 손수조 정봉주 정은혜 차명진 천호선)들은 인류의 가장 이상적인 리더로 꼽히는 ‘빅맨’ 체험을 수행했다.
두 프로그램이 권력에 접근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메시지는 결국 하나였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지 정치인이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취지에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권력의 쓰임새는 ‘권력을 위한 권력’으로 존재한다는 현실을 상황극과 정치인들의 여정을 통해 보여주며 바람직한 권력의 모습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 것이다.
▶ ‘무도’와 ‘7인의 빅맨’의 권력 사용법=시작은 달랐으나 두 프로그램이 보여준 권력 사용법은 곳곳에서 겹쳐졌다.
‘무한도전’ 속 폭군 정형돈이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풍자하는 장면들에선 험준한 산맥에서 길을 찾기 바쁜 정치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왕권이 ‘절대권력’이라는 데에 의심이 없는 폭군에게선 문명을 떠나온 정치인들이 누려온 과거 ‘권력의 자리’가 읽혔다. “권력은 달콤한 것”이라는 정봉주 전 의원, “국회의원 낙마 이후 통장개설하는 법도 몰랐다(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거나 “고위공직에 있으면 옆에서 보좌관들이 다 해주니 불편한 게 없다(박형준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는 정치권력 사용자들이 보여준 ‘권력의 민낯’이 그것이다.
예능 속 세태풍자는 거침 없었다. 향락을 즐기는 폭군은 정사에는 시큰둥했다. 국가권력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광기로 변해가자, ‘무능한 왕’은 소통의 기회를 잃었고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지아 산행 과정 중 2대 빅맨으로 뽑혔던 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의 사례였다. 빗속 산행 후 숙소와 음식을 제공해 “국민을 배불리 먹이고, 안위를 보장해줘야” 하는 빅맨으로서의 역할 수행 과정은 어수선했다. 빅맨은 “자유방임주의 권력”을 표방한다고 했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우왕좌왕했던 ‘리더십 부재’는 결국 신뢰를 잃었다. 동행한 정치인들은 “너무 무능한 빅맨이었다(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결정적인 것은 빅맨이 판단해줘야 하는데 산만함의 극치를 보여줬다(천호선 정의당 대표)”고 평가했다.
‘소통의 부재’가 가져온 실패한 권력은 더 참담했다. 뼈아픈 충언을 하는 충신(유재석)은 망나니로 신분이 하락하고, 감언이설에 놀아나는 무능한 왕은 기어이 애물단지가 됐다.
3대 빅맨이었던 정은혜 민주당 전 부대변인은 야심차게 내각을 구성하며 임무를 수행했지만, 제작진이 제공한 말 두 필의 잘못된 사용으로 민심은 떠났다. 정 전 부대변인은 구성원들의 의견에 따라 말 두 필에 짐과 함께 몸을 실었다. 비서실장으로 낙점된 손수조 새누리당 중앙미래세대위원장과 함께였다. 말에 올라탄 권력이 속도를 내자, 천호선 대표는 “빅맨과 비서실장이 말을 타는 순간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거리가 멀어지면 소통도 사라진다. 정치인들이 국민과 멀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걸 상징적으로 느꼈다”고 절감했다.
▶ 최후의 권력은 소통ㆍ공감의 권력= 전혀 다른 지점에서 시작한 ’무한도전’과 ‘7인의 빅맨’은 프로그램 말미 권력의 참모습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무한도전’의 일인자는 언제나 유재석이지만, 그는 하루 아침에 양반에서 망나니로 신분 추락을 겪는다.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과정에서 유재석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5대 빅맨이었던 천호선 대표는 ‘최후의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몸소 실천하는 권력을 보여주며 눈 쌓인 코카서스 산맥 등반에 성공했다. 방송 말미 정치인들은 “권력의 본질은 소통하는 만큼 힘이 커진다(천호선)”,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 이게 대한민국 권력이 나아갈 길(박형준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이라는 치열한 자기성찰로 ’7인의 빅맨‘은 마무리됐다.
진영논리로 해석되는 현실정치를 벗어나 ‘권력의 민낯’을 마주한 정치인들의 모습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권력이 부여한 계급사회의 실상을 풍자한 ‘무한도전’을 통해 읽히는 권력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물론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선 ‘최후의 권력’은 민심을 읽고 민의를 받드는 소통과 공감의 권력이라고 말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날 방영된 두 프로그램에 대해 “대중문화는 늘 시대를 반영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준다”며 “포악한 왕의 모습을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권력의 모습을 보여준 ‘무한도전’의 풍자정신과 권력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보여준 ‘최후의 권력’은 지금 이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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