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으로 가는 길’헤로인 전도연을 만나다
방은진 감독과 만들어낸 소외된 한 여성의 이야기
모든게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법정 장면이 가장 어려웠죠
아이 유치원 왔다 갔다하고… 촬영장 벗어나면 그냥 아줌마 남과 다른 점은 술 좀 마시는것?
“처음 사건 내용을 접하고는 화가 나고 답답했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앞섰어요. 하지만 작품을 끝내고 나서는 분노를 담은 영화라기보다는 따뜻한 가족 이야기라는 느낌이 더 강해졌어요. 사실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정부가 (재외) 국민 보호에 너무 소홀하고 미흡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작품의 출발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국은 너무 집에 가고 싶어하는 여자와 그 여자를 데리고 오고 싶은 남편, 그리고 엄마를 그리는 어린아이, 그들의 작은 이야기가 아닐까요?”
생활비나 벌어 볼 요량으로 남편 지인의 의뢰를 받아 해외 거래 물품(원석)을 운반하다 감쪽같이 속아 마약범으로 체포된 한 가정주부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주연배우 전도연(40)에겐 분노와 고통으로 시작해서 그리움과 가족애로 끝난 여정이었다. 영화는 지구의 반대편이나 다름없는 먼 이국땅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외면과 방치 속에 감옥에 갇혀 2년간을 보내야 했던 한 여성의 기구한 사연을 담았다. 부부의 애끓는 사정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그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방치한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과 관료들의 비열함이 또 다른 중심이다. 최근 서울 통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우리 영화나 ‘도가니’ 같은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더 화가 나는 점은 작품이 상영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런 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라며 “그렇듯 누군가의 잘못을 꼬집는 영화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은 훈훈한 가족애를 다룬 작품”이라고 말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여성감독(방은진)이 주연 여배우와 함께 만들어간 한 소외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도연에겐 극중 주인공이 그토록 바라던 재판을 받고 형을 선고받는 후반부, 법정에서의 최후 진술이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모든 장면이 감정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녀에게 처음으로 발언권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는 법정 장면이 가장 어려웠어요. 그녀가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아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되뇌어 왔을까요? 과연 ‘나같이 불쌍한 여자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을까요? 저는 법정 진술 장면에서 단순히 여린 여인이 아니라 성장하고 단단해진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고 평범한 여자였다면 고난을 통해 한층 단단해진 여인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죠.”
이번 작품은 전도연의 데뷔작인 ‘접속’이래 14번째 출연 영화다. 그리고 올해는 마흔 고개를 넘었다. “마흔이라니, 끔찍하다”고 스스로 던진 농담에 크게 웃더니만,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다.
“행복한 여자고 행복한 배우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행운이죠. 올해 마흔인데, 끔찍하진 않아요. 사실은 좋아요. 전에는 아등바등했던 것들이 살아보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편안해졌어요. ”
전도연은 다섯살배기 딸을 두고 있다. 촬영장을 벗어난 전도연의 일상은 어떨까?
“장 보러 다니고, 아이 데리고 유치원 왔다 갔다 하고, 그냥 아줌마의 생활이죠. 평범한 주부예요. 약간 남다르다면 술 좀 마시는 것? 하하. ”
그말마따나 “난 좀 엄격한 엄마인 듯하다”며 딸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전도연은 여느 ‘애엄마’와 다를 것이 없다.
“딸아이가 뭘 잘 못하면 저는 내 자식이라고 예쁘게 보진 않거든요. 약속이나 규칙을 안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제가 엄격하고요. 그런데 딸아이를 보면서 매번 제 자신이 이렇게 덜 성숙했나 반성하게 돼요. 어느 하루는 제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엄마가 어떤 것 같아?’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제 딸이 한다는 이야기가 ‘엄마 마음이 아직도 조금 구겨져 있는 것 같아’라고 대답하더군요. ”
전도연은 “어떤 분들은 칸영화제 수상이나 어떤 출연작에서의 연기가 전도연의 끝이고 최종 결과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겐 그저 긴 과정 중의 한순간”이라고 말했다.
여자로서도, 엄마로서도 마찬가지일 터다. 그녀의 차기작은 현재 이병헌과 촬영 중인 무협사극영화 ‘협녀’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