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9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8

레이싱 무대 위에 올려진 꿈에는 한계가 없다. 랠리 경기란 구불구불 이어진 길, 낭떠러지 길, 눈길, 혹은 길 없는 길을 달리는 레이싱이다. 그러므로 랠리 경기에서 우승하고자 하는 꿈에도 그 한계는 없을 것이다.

한계가 없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희생도 만만치 않다. 예기치도 않았던 일로 인해 드라이버들은 흔히 목숨을 잃기도 한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거나, 날아가던 새가 얼굴에 부딪쳐 사망하거나, 혹은 최고속도로 질주하다가 파손된 가드레일에 목이 잘려 어이없이 운명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F1 경기는 물론, 어떤 경주 대회라도 메디컬 센터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추게 마련이다. 여러 대의 구급차, 불이 났을 경우에 대비한 소방차, 응급구조용 헬리콥터를 준비함은 물론, 그 시설 안에 일반 외과의사, 화상전문 의사, 정형외과 의사, 신경계통 전문 의사, 마취 담당 의사, 수준 높은 간호사, 그리고 FA 교육과정을 이수한 수많은 자원봉사자를 파견하고 있다.

“더 이상 응급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서 탈수현상이 생긴 외에는 모두 양호합니다. 드라이버, 코-드라이버 모두 건강엔 이상 없습니다.”

구조팀과 함께 도착한 응급 의료진은 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에 이런 판정을 내렸다. 모두들 다행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에 북쪽에서 심한 모래바람이 내려올 것이란 기상예보가 접수되었습니다. 랠리 카 동호회 회원들께서는 한시바삐 동쪽 방향으로 빠져나가세요.”

구조 요원들과 의료진은 모래구덩이에 처박힌 1974년 산 치타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한 뒤에 유호성과 현성애를 헬기에 태우고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갔다.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만나게 되면 난감해질 것이란 판단에 초읽기로 현장수습을 마친 셈이었다.

애초부터 테러로 인한 사고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였다. 구조요원들의 판단에 따르자면 이번 사고는 한낱 운전미숙으로 인한 경주 사고였다. 비록 차량은 약간 파손되었지만 드라이버의 목숨이 위험한 대형사고도 아니었다. 그러니 장차 불어 올 모래바람이 걱정될 따름이었을 것이다.

이제 거친 모래바람이 사고현장에 불어닥치게 되면 1974년 산 치타가 빠져있는 구덩이는 언제 패어 있었냐는 듯 모래에 가려질 것이 뻔했다. 이를 테면 테러 사실이 감쪽같이 사라질 것이 자명했다.

물론 구조요원들이 현장의 좌표를 기록하긴 했지만, 향후 누구라도 그 현장을 다시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누가 엄청난 경비를 들여가며 모래 속에 파묻힌 머신을 찾아내기 위해 견인장비를 이끌고 고비사막 한가운데로 찾아 나설 것인가?

자동차와 함께 조각난 탄피, 화약폭발의 흔적마저 아울러 모래 속에 파묻히게 되면 오로지 유호성과 현성애의 증언만이 남게 되는데… 그나마도 추측을 기반으로 한 증언이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 갖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경우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권도일과 그의 보고를 들은 거성재벌 2세가 입을 다물 경우에 한하는 일이다. 하지만 권도일과 재벌 2세는 애초부터 이 일을 발설할 생각조차 없었다. 공연히 일을 크게 벌여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되면 비밀리에 성능 테스트를 단행한 에어 뮬의 존재만 드러나게 될 것이므로.

“하하하, 이제 머리싸움이 끝난 것 같군. 아랍 석유재벌 쪽에서도 이 정도면 우리에게 충분히 경고를 한 셈이라 여길 거야. 우리는 그들의 경고에 놀란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됐고, 비밀리에 에어 뮬 성능 테스트를 마쳤으니 만족하고, 북한 당국에서는 그들 땅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테러가 종결되었으니 오히려 좋아할 테고… 다 네 덕이로구나.”

“아버님, 우리에게 행운이 따르는 모양입니다. 북한 2선 그룹에서 골프장을 세 개나 지을 수 있는 6천억원을 요구해서 고민이었는데, 느닷없이 강유리라는 골프선수가 나서서 고민을 해결해주지 않았습니까? 아버님 덕이 높기 때문입니다.”

랠리 현장에서 수천㎞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거성그룹 회장실에서는 재벌 2세와 그의 아버지 왕회장이 이렇게 서로를 치하하고 있었다. 현지에 파견된 직원으로부터 모든 사실이 종합된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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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