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7> 저 높은 곳을 향하여 (8)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인간은 한없이 강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간혹 풀잎보다도 여리고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만약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라면, 인간의 의지력은 산산이 부저지고 처참하게 녹아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하늘에 운명을 맡기게 될 뿐이다.

유호성과 현성애가 풀잎보다도 여린 존재로 전락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다. 모래구덩이 속에 몸을 숨기면서부터 비 오듯 땀이 쏟아지더니 순식간에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 얼굴 위에 드라이빙 헬멧을 덮어썼기 때문에 호흡도 자유롭지 못했다. 오로지 살아있는 감각이라고는 청각뿐이었다.

“호성 씨, 어디서 엔진소리가 들려오지 않아요? 구조대가 온 걸까요?”

“아니야. 사막에서 구조는 헬기로 이루어져요. 저건 헬기 소리가 아니고 자동차 엔진소리잖아? 요르단 암살자가 되돌아 온 게 분명해.”

“그럼 우린 이제… 죽는 거야?”

“잔소리 말고 어서 헬멧까지 모래로 덮어!”

그들은 가물거리는 정신을 다잡아가며 헬멧까지 모래 속으로 비벼 넣기 시작했다. 온통 모래구덩이 속에 파묻힌 셈이었다. 당분간은 헬멧 안에 담겨있는 공기로 호흡을 해야만 했는데, 힘겨운 호흡보다도 막연한 공포가 더욱 두려울 따름이었다.

1분… 2분.

자동차 엔진소리는 귓가에서 멀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되돌아와 크게 울려 퍼지곤 했다. 모르긴 해도 요르단 암살자가 미처 이루지 못한 테러를 완결 짓기 위해 유호성과 현성애를 찾아 헤매는 것만 같았다.

‘아! 어머니…’

그제야 유호성은… 점점 가빠지는 숨을 참아가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의 어머니가 누구인가? 그동안 한 결 같이 대립의 각을 세운 채 어긋나게 지내왔던 HY 훌 푸드 신희영 회장 아니던가. 이 긴박한 순간에 어머니 신희영의 모습이 떠오르다니.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이란 우리 인생이 태어날 때부터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멍에다. 하지만 죽기 전까지는 살기 위해 몸을 움직여 활동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삶이다. 아! 나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나의 삶… 즉, 어머니가 바라던 아들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랠리 드라이버? 아니면… 골프선수?’

유호성은 가물거리는 정신으로 애써 이런 생각을 했다. 이토록 비참하게 사막 모래구덩이 속에서 최후를 맞이하는구나… 하고 여겨질 뿐이었다.

“유호성 씨! 유호성!”

“치타 드라이버! 현성애!”

한동안 정신 줄을 놓았던 것일까? 아련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뜬 유호성은 아직 자기가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겨우겨우 감지할 수 있는 소리는 분명히 자기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여기, 유호성! 살려줘요. 헬프 미!”

그는 기겁해서 두 팔로 모래를 헤쳐내고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드라이빙 슈트 속에서 온몸은 땀에 절어 있었다. 탈진해서인지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모래구덩이를 헤쳐 상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도 힘에 버거웠다. “여기예요. 찾았어요. 아직 살아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고함치는 소리에 놀라 유호성은 잠시 눈을 떴다. 도대체 이게 웬 일일까? 처음 눈에 띈 사람은 낯익은 강유리 선수였다. 아! 이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애도 살려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온몸에 맥이 빠지더니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며 천길 만길 심연 속으로 빠져들고야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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