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유혜림·노아름기자] ‘코리아 디스카운트’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구상을 담은 법안들이 29일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무더기로 폐기된다. 공매도 제도 개선, 토큰증권 제도화 등 굵직한 현안들은 여야 간 정쟁 속에 막판까지 제대로 논의 조차 못했다. 다만,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혜택 강화 등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정책들은 22대 개원과 함께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까지 계류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총 67건으로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공매도 제도 개선,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처벌 강화, 토큰증권 제도화 등 처리가 시급한 자본시장 관련 법안이 무더기로 사라지게 된다. 금융·투자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가 ‘민주유공자법’ 등 보훈 이슈로 여야 대치에 들어가면서 입법 기능이 마비된 결과다.
공매도 제도 개선은 막판까지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는 계류 중인 8개의 의원법안을 토대로 제재·처벌 조항을 종합해 정부 대안 초안을 마련했지만, 올해 소위가 한번도 열리지 않으면서 논의가 막혔다. 주요 내용에는 ▷공매도 전산화 시스템 구축 ▷벌금 상향 ▷부당이득에 따른 징역 가중처벌 도입 ▷계좌 지급정지 ▷금융거래·임원 선임 제한 명령 등이 있다.
토큰증권발행(STO) 법제화도 이번 국회에서 무산됐다.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을 의미한다. 자본시장 새 먹거리로 평가되면서 증권사들도 앞다퉈 STO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였지만 사실상 무기한 대기에 들어가게 됐다. 법안을 주도적으로 밀어붙여 온 윤창현(국민의힘), 김병욱(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두 낙선해 입법 동력도 약해진 상태다.
사모투자펀드(PEF) 업계에서 건의한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도 폐기된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에 발행기업과 주관사가 투자자를 미리 유치하여 공모주 물량 일부를 배정하는 제도를 뜻한다. 지난해 4월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 등이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같은 해 6월 한 차례 상정 이후 논의가 끊겼다.
국내에서는 선진 증시시장을 참조해 한국거래소(2018년)와 금융위원회(2020년·2022년)가 각각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 검토 계획을 언급하면서 관련 논의를 성숙시켜왔지만 국회에서 이렇다 할 결론도 내지 못한 것이다.
증시 활성화 마중물 역할을 할 민생·경제 법안도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의 하나로 ‘선배당·후투자’ 제도 정착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분기·반기 배당도 배당액을 확정한 이후 배당받을 주주를 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이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와 함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선 ISA의 비과세 한도 확대(200만원→500만원)를 골자로 한 조세특례제한법,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등 증시 세제 입법이 물 건너가게 됐다. 다만, 이번 총선 과정에서 ISA 혜택 강화 등 일부 여야 이견이 없는 정책들은 다음 국회에서 재논의될 전망이다. 22대 국회를 꾸린 뒤 다시 입법 절차를 밟더라도 정기국회가 열리는 9월은 돼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