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의용군 인터뷰

전장에서 수차례 죽을 고비

신체·정신 버틸 수 없어 귀국

한국 와서도 어려운 일상 복귀

“평범하게 정착해 살고 싶어요”

밝혔지만 다시 우크라이나로

지난 4월 경기도 모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우크라이나 의용군 출신 이성국 씨가 이동 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성국 씨는 2022년 당시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국제군단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이영기 기자.
지난 4월 경기도 모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우크라이나 의용군 출신 이성국 씨가 이동 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성국 씨는 2022년 당시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국제군단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이영기 기자.

[헤럴드경제=이영기 기자]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북한군 포로가 국내로 송환된 사실이 알려지며 4년을 넘게 이어지는 러우 전쟁 상황이 재조명 받고 있다. 헤럴드경제는 우크라이나 의용군에 들어가 러우 전쟁에 참전했던 한 한국인을 만나 들었던 전쟁의 참상과 일상 복귀의 어려움을 전한다. 지난 4월 인터뷰했던 의용군은 현재 다시우크라이나 전장으로 돌아왔다고 소식을 전했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4월 경기도 모처에서 만난 이성국(24, 가명) 씨는 약 10개월간의 우크라이나 국제군단 복무를 마치고 일상 복귀를 위해 긴 시간 회복 중이었다. 성국 씨는 이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인터뷰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가족 외 타인을 만나는 게 아직은 두렵다고 밝히며 일상 복귀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당시 일상 복귀에 대한 의지를 다지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후 약 반년 후인 지난 27일 북한군 포로 송환 소식에 러우 전쟁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성국 씨는 “다시 우크라이나로 와있다”며 “현재 강습여단에서 복무 중이고 전장과 5㎞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재정비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앞서 성국 씨는 여행금지 지역인 우크라이나에 입국해 의용군으로 활동하며 체류해 여권법 위반으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기자가 “다시 여권법 위반으로 처벌 받으면 어쩌려고 하나”라고 묻자 “우크라이나에서 시민권을 신청해뒀다. 한국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성국 씨는 지난 4~5월께 우크라이나 주변 국가를 우회하는 방법으로 2번의 시도 끝에 우크라이나로 되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성국 씨는 “보급 식량을 먹으면 배탈이 심하게 난다”며 “그래서 받은 월급으로 밥을 따로 사먹는데, 지금은 월급이 밀려서 제대로 못 먹고 있다”는 말과 함께 짧은 인사를 남겼다.

지난 지난 4월 경기도 모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우크라이나 의용군 출신 이성국 씨가 이동 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이영기 기자.
지난 지난 4월 경기도 모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우크라이나 의용군 출신 이성국 씨가 이동 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이영기 기자.

성국 씨는 17살 때 우크라이나로 건너갔다. 그제서야 한국에서 가질 수 없었던 따스함과 소속감을 느꼈다고 한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 모두 우크라이나에 있었고, 그 또한 점차 우크라이나의 일원으로 정체성을 갖췄다. 우크라이나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그가 의용군으로 참전한 배경이다.

그는 4월 인터뷰 당시 전쟁을 몸소 겪었던 끔찍한 참상을 전하며 “절대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현실로 복귀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동료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도 있다고 했다.

입대하자마자 전선 배치 소식…포격 받아 정신 잃기도

우크라이나 국제군단 소속으로 참전한 이성국(왼쪽) 씨의 2022년 당시 사진. [이성국씨 제공]
우크라이나 국제군단 소속으로 참전한 이성국(왼쪽) 씨의 2022년 당시 사진. [이성국씨 제공]

① 2022년 2월 24일

전쟁이 발발한 날 성국 씨는 폴란드에 있었다. 폴란드 여행을 시작한 날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휴대전화를 켜자 쉬지 않고 울려댔다.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는 연락이 빗발쳤다. 성국 씨는 그제야 전쟁이 난 걸 알았다. 함께 있던 친구는 폴란드의 할머니 집에 남겠다고 했지만, 성국 씨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폴란드 비영리 단체의 도움으로 의용군 입대를 준비했다.

위생병 출신 캐나다인과 그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우크라이나 군은 둘을 검정색 승합차에 태워 모처의 학교로 갔다. 전선 후방에 위치한 야보리우의 군사훈련시설이다. 그의 첫 입대였다.

기본적인 장비도 제공 받지 못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를 확인하자 함께 입대한 캐나다 국적 동료는 인근의 ‘조지아 군단’으로 갈 것을 제안했다. 의무 복무가 아닌 의용군은 계약 관계로,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이때 성국 씨는 첫번째로 죽을 위기를 넘겼다.

그는 “떠난 후 수일 후에 러시아가 야보리우 기지에 공습을 가했다”며 “초토화됐다고 들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고 회상했다.

우크라이나 국제군단 소속으로 참전한 이성국 씨의 2022년 당시 사진. [이성국씨 제공]
우크라이나 국제군단 소속으로 참전한 이성국 씨의 2022년 당시 사진. [이성국씨 제공]

실제로 2022년 3월 13일 새벽 러시아는 야보리우 군사훈련시설에 수십 발의 순항 미사일로 공습을 가했다. 당시 이 공격으로 35명이 사망하고 134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아 군단의 환경은 더 열악했다. 장비도, 훈련도 없이 전방으로 가야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당시에 총기들이 부족해서 장비도 없었다”며 “태어나서 총은 한번도 쏴보지도 못했을 때인데, ‘일단은 전선으로 나가라.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장비와 훈련 없이 전장에 나가면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성국 씨는 비교적 체계가 잘 갖춰진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국제군단으로 다시 한번 옮겼다.

A중대에 소속돼 벨라루스 인근에서 1개월가량 훈련을 받았다. 오트밀죽을 먹으며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이어지는 온갖 훈련을 받았다. 성국 씨는 훈련 중 모종의 이유로 B중대로 옮겨 1개월 더 훈련을 받은 뒤 러시아 인접지역이자 우크라이나 제 2의 도시인 ‘하르키우’로 떠났다. 러-우 전쟁의 최대 격전지 중 1곳이다.

② 2022년 6~12월

성국 씨의 중대는 특정 지역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고 중대는 작게 나눠졌다. 성국 씨는 분대원 4명과 함께 작은 마을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다. 매일 주변에서 포격이 끊이지 않았다. 새벽에 자다가도 일어나 참호에 뛰어 들어가는 일도 반복됐다.

전황이 악화되자 분대원 3명이 인근 교전 지역으로 지원을 가게 됐다. 주둔하던 마을에는 성국 씨와 스웨덴 출신 분대원만 남게 된 상황. 분대원이 빠진 걸 확인한 러시아군은 오전 11시께부터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교전 중 총격을 받아 차량에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 2022년 당시 이성국  씨가 직접 촬영한 사진. [이성국씨 제공]
교전 중 총격을 받아 차량에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 2022년 당시 이성국 씨가 직접 촬영한 사진. [이성국씨 제공]

설상가상 지원 요청을 위한 무전기도 먹통이었다. 신호를 잡기 위해 다섯 차례 민가 지붕에 오르다가 추락해 양 어깨도 탈골 직전까지 갔다. 신호를 잡기 위해 뛰어다니던 중 포탄 파편에 맞아 왼쪽 발목에도 큰 부상을 입고, 빈 집으로 몸을 숨기고 그대로 기절했다.

성국 씨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녁이었다”며 “당시 인근 지역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방어에 성공하면서 포격도 멎었고, 본부에서 지원을 보내줘서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설명했다.

6월 포격으로 입은 부상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성국 씨는 작전에 투입됐다.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버텼다고 한다. 크고 작은 작전을 6차례 더 수행했다. 야간투시경도 없이 야간 정찰 당시 러시아군에 발각돼 총격을 받으면서도 밤새 포복으로 산을 넘으며 죽을 위기를 피하기도 했다. 러시아 접경지역만 다니며 약 6개월간 생사를 넘나들던 그는 극심한 정신적 피로와 부상으로 귀국을 결정했다.

성국 씨는 “당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전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전장에 있으면 피폐해지고 폭력성이 너무 커진다. 동료끼리도 사소한 일로 자주 싸우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회상했다.

어려운 일상 복귀...제 3국에서 새 삶 찾기로

한국으로 돌아온 성국 씨는 또 다른 전쟁을 치렀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여권법 위반으로 처벌도 받았지만 일상 복귀는 더 큰 숙제로 남았다. 한국군 복무도 쉽지 않았다. 귀국 후 입대한 군대에서 PTSD 진단을 받고, 일찍 전역했다.

성국 씨는 “본가 근처에 공군 비행장이 있는데, 전투기 비행 소리가 들리면 예민해졌다”며 “폭력성도 줄지가 않아서 ‘눈이 뒤집히고’ 나면 집안이 쑥대밭이 돼 있을 때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2022년 당시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국제군단 소속 이성국 씨와 동료들 사진. [이성국씨 제공]
2022년 당시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국제군단 소속 이성국 씨와 동료들 사진. [이성국씨 제공]

이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일상생활이 안 됐다”며 “하루 종일 잠만 잘 정도로 너무 무기력하다가도, 어떤 때는 폭력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문득 머리를 파고 드는 동료들 생각에도 고통스럽다. 참전 당시 성국 씨 주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동료만 3명이다. 그중 1명은 각별했던 사이다.

그는 “한 영국 친구랑 친하게 지냈다. 그 친구가 본인 주소랑 부모님 연락처를 주면서 ‘계약 끝나고 갈 곳 없으면 영국으로 오라’고 말할 정도로 가까웠다”며 “그 친구는 계약 만료 후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본국에서 삶을 정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트라우마로, 한때는 입원 치료까지 해야할 정도였지만 현재는 많이 회복돼 치료용 약물도 줄였다. 특히 성국 씨 가족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는 “이유도 없이 울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진정될 때까지 누나가 달래줬다”며 “지금은 누나와 매형이 챙겨주고 있다. 누나네 일을 도울 정도로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제군단 소속으로 참전한 이성국 씨의 2022년 당시 사진. [이성국씨 제공]
우크라이나 국제군단 소속으로 참전한 이성국 씨의 2022년 당시 사진. [이성국씨 제공]

성국 씨는 당부도 전했다. 그는 “혹시나 싶어서 말하면, 궁금한 마음이라면 전쟁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최악을 경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성국 씨는 지난 4월 인터뷰를 마칠 당시 조지아로 떠나 새 삶을 찾으려고 했다. 우크라이나에서 마치지 못한 학업을 마칠 계획도 공유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조지아에서 잘 정착해서 대학교 다니고, 또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맺고 살고 싶어요”

그러나 성국 씨는 끝내 일상에 안착하지 못했고,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전장에 머물고 있다.


20k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