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지난해 8월부터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

건설근로자들 “인삼천으로 그늘 만들어서 휴식”

건설 근로자들 “휴게시설 좁거나 에어컨 없어”

“작업장-휴게실까지 30분 거리…쉬는 시간 동나”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헤럴드경제DB]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안효정·김영철 기자] “휴게시설 흉내만 낸 거죠. 우린 휴게실은 에어컨도 없어서 사비로 설치했어요.”

올해로 26년째 철근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장석민(60) 씨. 연일 지속되는 폭염에 작업할 때마다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지만 더위를 식히며 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체감온도가 35도까지 올라 주변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동료 인부들을 쉽지 않게 목격할 수 있지만, 정작 휴게시설의 수용 공간은 모든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협소하단다. 그는 “현장 노동자가 100명이 넘는데 휴게실은 10명 밖에 못 들어갈 정도”라며 “휴게실이 더 크고 에어컨까지 구비됐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체감온도가 35도를 웃도는 폭염 속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건설 노동자의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8월 18일부터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장씨를 비롯한 건설 노동자들은 이 같은 시설이 형식에 그칠 뿐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 건설업 가장 많다

산업장 중에서도 건설 현장은 온열질환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직종으로 손꼽힌다. 지난해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온열질환 산업재해 발생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7년간(2016~2022년) 집계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 중 건설업에서 발생한 경우가 94건으로 전체 산업 중 가장 많았다.

폭염이 지속될수록 현장에서 온열질환 증상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전날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이 지난달 31일부터 이틀간 3206명의 건축 현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절반 이상의 응답자(55%)가 ‘폭염으로 본인이나 동료가 실신하는 등 이상 징후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휴게시설은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쉴 때 모든 노동자들이 충분히 쉴 만한 공간이 마련돼 있는가’의 문항에 전체 응답자의 68.3%는 ‘있지만 부족하다’, 19.8%는 ‘없다’고 답했다. 또 휴게실 환경을 물어보는 질문엔 32.5%가 ‘냉난방 시설이 없다’고 했다.

장씨가 근무하는 공사장에도 휴게 시설에 에어컨이 없어 동료 노동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사비를 모아 에어컨을 설치했다. 장씨는 “고온에서 일을 하다 잠시 휴게실에 들어가도 숨이 턱턱 막히는 건 마찬가지”라며 “사측에서 적어도 근로자들을 위해 에어컨 정도는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작업장-휴게실까지 도보 30분…“이동하다가 휴게시간 끝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헤럴드경제DB]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헤럴드경제DB]

휴게시설이 있어도 작업장에서 먼 경우 사실상 근무 중 휴식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철근 노동자 박모(60)씨는 “작업장에서 휴게실까지 걸어서 30분이다. 휴게실을 오가는 것도 ‘일’”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휴게시설 대신 그늘말이나 건물 밑에서 잠깐 땀을 식히는게 전부다.

건설노조가 시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휴게시설이 지금 일하는 작업 위치와 가까운 곳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24.9%가 ‘없다(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공동휴게시설과 사업장 간 왕복 시간이 휴게시간의 20%를 넘지 않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현장에서 이를 지키지 않는 사업장이 여전히 많다.

박세중 건설노조원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는 더울 때면 인삼천을 깔아 그늘을 만들어 쉬곤 한다. 박 노조원은 “가령 내가 20층에서 일하는데 휴게실은 1층에만 있을 정도로 작업장과 휴게시설 간 거리가 멀다”며 “그늘만 있으면 널빤지라도 깔고 그 위에서 쉰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건설 현장 온열질환 발생을 막기 위해 휴게시설 규모나 작업장과의 거리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손익찬 일과사람 변호사 “휴게시설 규모나 작업장까지 거리 외에도 휴게시간, 식수나 제빙기 제공 등 건설 노동자의 건강장해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더 적극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n@heraldcorp.com
yckim6452@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