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뜨거(워) 죽겄으니까 집에 들어가라 해도 죽어도 안 가. 내 옆만 졸졸 따라다녀. 내가 그렇게 좋은가 몰라 (웃음)”
백발이 성성한 ‘엄마’의 짝꿍은 다름 아니라 검은색과 회색 털이 뒤섞인 개 ‘점순’이다. 일평생 개를 미워하고 멀리했던 엄마는 점순이를 만나고 달라졌다.
잘 익은 블루베리를 따서는 점순이의 입에 가장 먼저 넣어주고,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한낮이든 밤이든 산책에 나섰다. 길을 가다가 점순이가 한눈 판 사이 수풀 속에 몸을 숨기기도, 엄마를 찾아내는 점순이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사단법인 ‘동물권행동 카라’가 14일 공개한 영상 ‘짝꿍’의 한 장면이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해부터 개 식용 종식에 관한 메시지를 릴레이 영상으로 제작하는 ‘그만먹개(犬)’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초복과 중복, 말복에 맞춰 5개의 영상이 공개하고 있다.
중복에 맞춰 나온 영상 짝꿍은 영화 ‘제비’의 연출자이자 환경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이송희일 감독은 개를 미워하던 엄마가 점순이에게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을 약 6분 분량의 영상에 담아냈다.
엄마가 줄곧 점순이를 이뻐했던 건 아니었다. 점순이가 입양된 건 2018년 6월께. 엄마는 처음에는 점순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럼에도 개를 받아들이게 된 데 관해 이송희일 감독은 “엄마는 개를 싫어했지만 당시 나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엄마의 마음이 바뀐 건 약 석달 후였다. 이송희일 감독이 전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고향 집에 점순이는 없었다. 동네 산을 뒤져 찾아낸 점순이는 파보 바이러스성 장염에 걸려 있었다. 이 병에 걸린 개는 식욕 부진,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을 보이고 증상이 심해지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이성희일 감독은 “의사는 이미 늦었다고 했다”면서도 “하지만 점순이를 끌어안고 밤낮으로 간호했다”고 했다. 그렇게 점순이가 병을 이겨내자 이송희일 감독은 눈물을 터뜨렸다. 이를 지켜본 엄마도 점순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 이송희일 감독은 “평생 개를 함부로 대하던 엄마가 변한 건 그 때부터였다”라고 돌이켰다.
엄마에게 점순이는 “쳐다만 봐도 아까운” 존재가 됐다. 엄마는 연신 점순이를 쓰다듬고, 끌어 안고, 얼굴을 맞댔다. 엄마가 점순이를 받아들인 데 이어 끔찍하게 여기게 된 건 단순히 아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가 굽은 허리로 밭 일을 할 때도, 매일 아침 노인 일자리로 출근을 할 때도 점순은 몇 시간이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잠자코 기다렸다. 엄마는 “멀리서 할매가 보이면 발이 안 보이게 뛰어와”라며 “그래서 이쁜 마음이 더 들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점순을 사랑하게 되면서 개들을 대하는 엄마의 마음도 달라졌다. 엄마는 “전에는 개가 너무 미워서 어찌나 때렸나 몰라. 소리 지르고. 내가 뭐하러 개를 때렸나 후회 돼”라며 “그 대신 이제 점순이한테 잘 해주면 돼지”라고 했다.
점순이뿐 아니라 주변의 개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마의 집 앞에는 개 네□마리가 갇혀 있는 ‘뜬장’(철제 그물로 만든 우리)가 있다. 짝꿍과도 같은 반려견 ‘점순’과 산책 중 뜬장을 지나칠 때마다 갇힌 개들이 안쓰럽다.
엄마는 “가둬 놨다 잡아먹고 크면 잡아먹고…정말 불쌍해. 우리 점순이는 이렇게 산책도 하는데 걔들은 얼마나 답답할까”라며 “사람들 참 이상해. 사람한테 잘하고, 그렇게 따르는데 왜 잡아 먹냐. 짝꿍을 어떻게 잡아 먹냐”고 반문했다.
“엄마한테 점순이는 뭐야?”라는 이송희일 감독의 질문에 엄마는 “사랑하는 내 짝꿍. 조금만 안 보여도 보고 싶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점순이를 향해 “점순아, 우리한날 한시에 죽자. 내가 먼저 죽으면 너가 슬플 거고, 너가 죽으면 내가 슬플 것이니”라고 했다.
‘그만먹개(犬)’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임순례 감독은 “개 식용 종식의 당위성과 염원을 강조하는 영상들이 개 식용 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