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두 차례의 만남 이후 ‘윤 대통령의 방일설’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해 12월에도, 올해 2월에도 복수의 언론을 통해 유력하게 나왔다. 이러한 관측은 강제징용 배상 해법안에 대한 한일 양국 간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에서 시작됐다.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되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이 초청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몫한다. 양국 간 최대 현안으로 꼽히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해결하고 양 정상이 관계정상화를 선언한 후 G7에 참여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 해법안을 두고 양국 간 막바지 협상이 답보 상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4차례의 민관협의회를 통해 각계의 의사를 모아 12월 공개했다. 판결금은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재원으로 우선 피해자들에게 변제하는 방안이 주요 골자다. 사과는 일본 정부가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계승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물론 피고 기업의 배상금 기여와 직접 사과를 요구하며 반발하는 피해자 측과의 소통은 큰 과제로 남아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문제가 해결됐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한국이 해법안을 가지고 오라고 뒷짐 지고 있던 일본은 막상 한국이 해법안을 제시하자 뒷걸음질 치는 모양새다. 피해자 측이 강조해왔던 ‘성의 있는 호응 조치’는 지금까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상권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쯤이면 기시다 총리가 언급한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겠다’는 의지에 의구심이 생긴다.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된 배경으로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꼽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는 국제사회에서 엄연한 중견국으로 자리 잡은 한국의 국력상승에 따른 한일 관계의 수평화를 꼽는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문제 삼아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했고, 한국은 ‘다시는 지지 않겠다’고 선언,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로 자립화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한때는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남북미 대화가 이뤄지면서 더는 경제와 안보에서 한국이 일본에 기대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증명했다. 그 정점으로 2021년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우리 정상이 초청돼 ‘사실상 G8’로 자리 잡는 모습을 꼽는다. 당시 일본 측은 잠정 합의했던 약식 회담도 일방적으로 취소하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한일 관계의 중대한 이정표로 꼽는 이유는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담았고, 이를 한국이 수용하면서 양국이 ‘미래 지향’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본은 어떠한가. ‘과거에 대한 사죄’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데다 ‘현실에 대한 직시’도 없다. 때문에 ‘미래지향적 관계’로의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진정으로 양국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모두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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