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음악제’ 류재준 음악감독
13번째인 올해 주제는 ‘우리를 위한 기도’
여전히 이어지는 재난과 전쟁 견디는 우리
탄생과 죽음, 영생 담긴 위로의 음악 축제
어느 연주회 오든지 최상급의 연주 선사
최고 수준 연주자들과 함께 더 먼 미래로
“우리가 당신들을 위한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
모차르트의 ‘대미사’(탄생을 위한 기도), 펜데레츠키의 ‘기도’, 자신의 스승인 폴란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1933~2020)를 추모하는 류재준의 ‘카디즈(Kadisz)’와 ‘현악 사중주를 위한 협주곡’까지.... 축제는 여전히 이어지는 재난과 전쟁을 견뎌내는 우리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 그 안엔 탄생과 죽음, 영생이 담긴다.
“일상의 루틴처럼, 당연하게 해오던 것들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몇 년이었어요. 절절하게 체감한 코로나19, 알면서도 애써 눈감고 있는 전쟁...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어요.”
올해로 13년째 이어오고 있는 서울국제음악제(SIMF·10월30일까지)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류재준 음악감독은 “음악으로 우리를 위한 기도를 하며 안도를 얻어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한 주제”라고 말했다. 류재준은 폴란드 정부가 주는 1급 문화훈장을 받은 작곡가다.
계절마다 ‘클래식 음악 축제’는 넘쳐나지만, 가을의 문턱에 만나는 서울국제음악제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다.
“서울시의 인구는 1000만 명에 달하지만, 클래식을 즐기는 인구는 7만 명 미만이라는 통설이 있어요. 서울시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거죠. 그런데도 이 소수의 규모를 위한 음악제가 과연 계절마다 필요할까요.”
류 감독은 “그럼에도 음악으로 해야 하는 일이 반드시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름만 보고 50만원에 달하는 해외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서울국제음악제는 어느 연주회를 오든지 최상급의 연주를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국제음악제는 태생부터 “최고 수준의 콘서트”이자, “음악가들이 모여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자 태어났다.
“쇼팽콩쿠르의 조성진부터 올해만 해도 피아니스트 임윤찬,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플루티스트 김유빈이 세계 콩쿠르에서 1등을 했어요. 하지만 그 대단한 친구들이 다 외국에서 활동해요. 국내 무대는 턱없이 부족하고, 우리의 시장은 너무 작아요.”
전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은 서울국제음악제에 모여 음악으로 공감하고, 한국 연주자들은 서울국제음악제를 발판 삼아 해외로 향한다. 류 감독은 서울국제음악제는 본질적으로 “음악인과 관객을 위한 음악제로, 클래식 시장의 파이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 음악제에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서울국제음악제를 위해 활동하는 페스티벌 악단인 SIMF 오케스트라로 모여 호흡을 맞춘다. 쟁쟁한 이름들이 SIMF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약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김다미, 비올리스트 김상진, 플루티스트 조성현,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호르니스트 김홍박 등 다양하다. 말 그대로 ‘어벤저스 악단’이다.
계절마다 이어지는 음악제엔 저마다의 전통을 자랑하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존재한다. 통영국제음악제,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 태어난 페스티벌 악단이 자리를 잡았고, 후발주자가 속속 등장 중이다. 류감독은 “우리가 다른 점은 서울국제음악제 오케스트라는 실내악(앙상블)에서 시작해 뻗어나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물론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9년 축제와 함께 오케스트라도 출범했으나, “이상만 가지고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상을 뒷받침할 “공동의 목표”, “열악한 여건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점도 인식했다. 서울국제음악제 오케스트라만의 색깔을 갖추고, 지금의 형태로 정착하기 까지 10여년이 걸린 셈이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원천은 앙상블에서 활동을 시작해 무수히 많은 외국의 대가들과 연주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저마다 메인 연주자가 돼 오케스트라를 끌고 가고 있다는 점이에요.”
음악제의 오케스트라는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과 함께 더 먼 미래를 꿈꾼다. 류 감독은 “지금 당장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30~40년 후에도 최고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음악제에선 젊은 연주자들을 꾸준히 충원한다. 20대 연주자 박하양과 50대에 접어든 김상진이 공존하는 것도 특징이다. 올해부터 서울국제음악제는 합창단도 결성해 함께 한다.
어느덧 13회를 맞았지만, 류 감독은 “서울국제음악제는 관객들에게 아직도 태동기”라고 말했다. 공연기획사 오푸스가 주관하고 서울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이 축제는 예산도 넉넉치 않다. 제작비는 12~13억원이 들어가나, 지원 예산은 1억원에 불과하다. 류 감독은 자신이 외국에서 위촉받은 작품으로 작곡료를 벌면 그것을 음악제와 연주회에 쓴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소니클래식을 통해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 2번’을 녹음해 전 세계에 발매하는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
류 감독은 “음악은 망가뜨리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쌓아올리는 데엔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제서야 조금씩 우리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은 알면 알수록 잘 들린다고 하잖아요. 음악을 듣기 위해 공부하라고 하는 건 좋게 말하면 무리한 요구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례한 요구예요. 배경지식이 있다고 음악이 즐거워지는 건 아니에요. 이 축제의 방향성은 우리들만의 리그를 만들지 않는 거예요. 치열한 자기 성찰과 자아 추구는 다 말장난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행복한 음악 축제를 꿈꿔요. 그러기 위해 가장 기본을 지켜가고 있어요. 결국 음악이죠. 최상의 음악이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