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핵심 부품인 배터리산업의 경쟁력이 시장에서의 승패를 좌우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주요국은 자국의 배터리기술 육성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20여년 전부터 배터리 제조는 물론 원재료, 가공재료 납품업체들의 육성 및 인력 양성에 힘써온 결과, 산업계·학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배터리산업은 합성, 조립 등 제조 공정 분야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로 인해 배터리산업의 전체적인 경쟁력은 선진국들과 비교해 크게 높지 않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K-배터리의 경쟁력에 대한 위기론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배터리기술은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공정기술이 중요했다면, 차세대 배터리기술의 핵심은 소재다. 리튬배터리 내부는 전극물질들로 구성돼 있고 리튬이온이 이동하면서 충방전되는데 끊임없이 이동하는 리튬으로 인해 배터리는 구조의 변화를 겪고 이것이 성능 열화로 이어진다. 이러한 열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환자의 치료를 위해 검사하고 진단하는 것처럼 첨단 전자 현미경과 분석장비를 통해 배터리 내부의 소재 열화 과정을 관찰해야 한다.
문제는 배터리 내부를 관찰하는 것이 도전적인 기술이라는 것이다. 배터리를 구성하는 물질들이 대기에 노출되면 산화에 의해 완전히 다른 물질로 바뀌기 때문에 기존의 분석기술로는 배터리 소재의 열화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와 같이 특별히 소재를 대기에서도 제어할 수 있는 오퍼란도(Operando) 분석 플랫폼이 필요하다. 오퍼란도 분석법은 소재의 사용 환경과 동일한 환경에서 사용과 분석이 동시에 진행되는 방법이다. 배터리 오퍼란도 분석은 고가의 첨단 분석장비와 산소나 습도와 같은 환경제어기술 등을 보유해야 하고 장비, 분석, 연구 분야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국내는 물론이고 선진국에서도 구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는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를 통해 소재산업에 대한 원천기술 없이 공정기술만으로 운영돼 온 산업구조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대한민국이 배터리산업의 세계적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배터리 원재료 합성, 소재 설계기술, 소재열화 억제기술 등에 대한 첨단 분석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직은 국내 연구진이 보유하고 있지 못한 오퍼란도 분석 플랫폼을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배터리 역시 승자가 기술 패권을 차지하는 분야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나름의 경쟁력을 가졌던 분야였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소재 분야의 원천기술과 첨단 분석장비, 전문인력 등의 통합적인 시스템을 갖춘 국가가 혁신기술을 개발해낼 것이고, 그들이 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 경쟁에서 승자가 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지원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한편 약점을 진단·보완할 수 있는 종합적인 안목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다. 지금이야말로 배터리 기술패권 시대를 준비할 골든타임이다.
안재평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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