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여우락 페스티벌’ 화려한 피날레
7월 22~23일 ‘여우락 익스텐션’
멀티탭으로 이어져 반짝이는 음악가들
실험과 도전으로 완성한 K-뮤직의 오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실험과 도전이라는 명사의 ‘의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14명의 아티스트가 한 자리에 모였다.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각오로 다리를 불살라버린”(해금 연주가 천지윤) 이들의 무대는 새로운 시도에 주저함이 없는 K-뮤직(한국음악)의 어제와 오늘, 또 내일을 보여줬다.
거문고 4대와 가야금 2대, 해금과 일렉트로닉 기타, 드럼과 온갖 전자 악기들이 한 무대에 올라왔다. 낯선 풍경이었다. 한 공간에 놓일 일 없는 악기들은 제 주인을 만나기 전 관객과 먼저 인사했다. 지난 22~23일 양일간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2022 여우락 페스티벌’의 폐막 무대인 ‘여우락 익스텐션’을 통해서다.
이번 페스티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진두지휘한 박우재는 ‘여우락 익스텐션’에 대해 “공연의 제목처럼 14명의 아티스트가 ‘멀티탭’으로 이어져 반짝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무대”라고 했다. ‘여우락 익스텐션’은 올해 ‘2022 여우락 페스티벌’을 빛낸 출연자 중 총 7개 팀이 함께 꾸몄다. 이들이 각각 개별 무대를 선보이고, ‘익스텐션’를 위해 새로 만든 단체곡을 연주하는 구성으로 진행됐다.
공연은 무토가 만든 단체곡 ‘콘스탄트’로 문을 열었다. 무토의 박훈규가 선보이는 미디어아트가 흐르고, 13명의 음악가는 동시에 소리를 내며 음악의 확장과 증폭을 들려줬다. 기묘했다. 전자악기와 아날로그 악기가 어우러지고, 새로운 주법을 시도하는 전통악기는 기존의 것과 다른 소리를 냈다. 활로 켜는 탓에 첼로 소리를 내는 거문고(박우재)는 서양 악기인 첼로(상흠)와 어우러지고, 지극히 한국적인 가야금과 거문고 소리와도 조화를 이뤘다.
전혀 다른 악기들의 조화, 만날 일 없던 장르간의 조화는 그간 ‘여우락 페스티벌’이 꾸준히 보여준 시도였다. 현재 전통음악 기반의 음악가들이 추구하는 방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번 페스티벌에 모인 음악가들 역시 2000년대 이후 우리 음악의 실험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온 사람들이다. 이날치 장영규와 국악 창작그룹 비빙 활동을 해온 천지윤은 “여우락이 처음 시작된 2008~2009년만 해도 국악을 통한 새로운 시도에 대한 논쟁이 남아있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엄숙주의가 존재했던 당시의 시도가 ‘하나의 교과서’가 됐고, 지금은 더 놀라운 새로움을 추구하게 됐다. 천지윤은 “전통음악이 대중적 어법을 가지고 대중문화에 흡수되는가 하면, 재미있는 코드를 넣으며 엄숙주의를 넘어섰다”고 봤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여우락 페스티벌’이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 그 때 그 때 우리 음악의 트렌드를 반영했고, 때론 앞서 갔다. 2011년 2회 ‘여우락 페스티벌’의 주제는 ‘우리만 몰랐던 우리음악의 저력’이었다. 이 주제는 당시 우리음악의 흐름과도 관계가 깊다. 2010년 한국음악이 월드뮤직 시장에서 두각을 보인 중요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세계 최대 월드뮤직 페스티벌로 꼽히는 워맥스(WOMEX, World Music Expo)의 오프닝 무대에서 토리 앙상블, 바람곶, 비빙이 합동무대를 선보였다. 현재 이 세 팀은 지금의 ‘한국음악’의 새로운 장을 연 중요한 팀으로 기억되고 있다. 비빙의 장영규는 씽씽에서 이날치로, 바람곶의 허윤정은 재즈와의 접목을 시도한 블랙스트링으로 이어졌다. 2004년 결성된 바람곶은 원일(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박순아, 이아람(블랙스트링, 나무), 박우재(무토), 박재록을 멤버로 했다. 이들의 DNA가 우리음악 안에 창조적 힘을 응축하게 했다.
2012년부터 양방언이 3회 연속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는 시기엔 다양한 실험이 이 안에서도 이어졌다. 특히 2014년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 최희선, 전방위 뮤지션 윤석철까지 출연, 대중음악과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 당시 주제가 ‘브랜드 뉴(실험)’이었다. 2021년부턴 박우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이 때부터 ‘여우락 페스티벌’은 지금 우리음악이 이어가는 다양한 시도를 보다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번 ‘여우락 익스텐션’ 무대는 올해 주제인 ‘확장, 증폭, 팽창’을 오롯이 보여줬다. ‘여우락 익스텐션’은 20여일 이어진 여우락 무대의 하이라이트를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해금과 EDM이 만난 천지윤과 상흠, 전통악기 편경의 소리를 모듈러신스를 활용해 다양하게 변주한 임용주의 무대(‘미션 1425’), 드럼과 판소리, 거문고가 어우러진 밤 새(황진아 서수진)의 무대는 그간 음악가들이 이어온 시도의 방향성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천지윤과 상흠의 ‘구름 그림자’는 EDM의 BPM을 따라 가는 해금의 속주가 압권이었다. 여기에 무토 박훈규의 미디어아트까지 더하지 극장은 금세 클럽으로 변신했다.
잠비나이의 멤버이자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수석악장인 이일우의 무대는 ‘1인 다역’이 돋보였다. ‘이토록 거대한 어둠 아래 촛불 하나’라는 곡을 통해 피리와 일렉트로닉 기타를 오가고, 다양한 소리를 실험했다. 록발라드를 떠올리게 하는 맑고 투명한 일렉트로닉 기타가 아득하게 들려오다 그 위로 호소하는 피리 소리가 얹어지니 감정의 기승전결이 한 편의 드라마가 됐다. 흥미로운 것은 조명이었다. 고요한 어둠 아래 홀로 있던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음악이 서정성을 더해가자, 조명은 객석의 어둠을 거두고 여린 빛을 선물했다. 더이상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존재로의 감정의 공유를 들려준 음악이었다. 마치 관객과 함께 해야 외롭지 않다는 음악가의 메시지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가야금 거문고 듀오인 리마이더스와 달음은 ‘원심력’이라는 신곡을 선보였다. 리마이더스 김민영이 작곡한 이 곡은 네 명의 연주자 개개인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도전으로 협업 무대를 만든 한 팀으로의 음악을 들려준 무대였다. 결코 함께 할 일 없던 두 팀의 K팝 그룹 못지 않은 호흡이 인상적인 무대였다. 이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위로하는 대금 연주자 차승민, ‘음악 실험의 대명사’인 무토가 그들이 시도하는 ‘오늘의 음악’을 들려줬다.
무토의 음악은 실험과 시도를 거듭하며 이들만의 정답을 찾아간 모습이었다. 사랑방에 둘러앉아 연주하던 전통악기가 전자음에 무너지지 않는 방식을 발견했고, 그것은 이질적 충돌이 아닌 절제된 조화로움으로 발현됐다. 전통음악과 전자음악,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들이 이룬 성과였다.
이날 무대의 압권은 단체곡 두 곡이었다. 천지윤과 상흠이 ‘번 더 브릿지(Burn The Bridge)’는 제목 그대로였다. 다리를 불태우고 강을 건넌 어떤 음악가들의 이야기였다. 모든 음악가들의 연주가 한꺼번에 밀고 들어가는 대범함은 아찔했다. 그러다 솔로와 단체 연주를 반복하며 음악은 쌓여갔고, 세계는 확장됐다. 피날레는 궁중음악의 하나인 ‘수연장지곡’이었다. 박우재는 “이 곡은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해온 우리의 뿌리와 근원을 찾아 그곳으로 다가가는 전통적인 무대”라고 했다. 모든 순간 실험의 연속이던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무대였다.
가장 전통적인 음악은 눈부시게 빛나는 음악가들의 시도로 완전한 새로움을 입었다. 낡고 오래된 줄 알았던 음악, 하지만 가장 ‘젊은 음악’. ‘여기, 우리 음악’(여우락)이 있었다.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