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리투아니아가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 일환으로 화물 운송을 제한하고, 이에 러시아가 보복 경고에 나서 발트해 연안의 ‘시한폭탄’이 된 러시아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세 불안이 발트 연안으로 불똥이 튄 모양새다.

칼리닌그라드는 면적 1만5125㎢(충청도 크기)에 인구 103만명이 거주하는 러시아의 작은 주(州)다. 러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국토가 넓은 국가인 점을 생각하면 정말로 작다.

'육지의 섬'…공포에 떠는 주민들

러시아 본토(왼쪽 붉은색)와 동떨어진 칼리닌그라드의 모습이다. [리얼라이트로어 유튜브채널]
러시아 본토(왼쪽 붉은색)와 동떨어진 칼리닌그라드의 모습이다. [리얼라이트로어 유튜브채널]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타임스에 따르면 이 곳 주민들은 리투아니아가 화물 운송 제한에 나선 뒤로 공포 속에 물품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현지 주민은 "운송 금지 첫날 모두가 일제히 모든 걸 사러 나갔다"고 전했다. 특히 주민들은 가스 등 에너지 공급이 끊길까 우려했다. 안톤 알리하노프 칼리닌그라드 주지사는 "에너지 공급은 최소 8월 10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진정을 촉구했다.

리투아니아의 EU 제재 이행은 이제 시작이란 점에서 앞으로 이 지역의 불안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금속과 철강 운반이 금지됐지만 7월 10일부터는 시멘트와 술, 8월10일부터는 석탄과 다른 고체연료, 12월 5일부터 석유를 운반할 수 없다.

칼리닌그라드의 지정학·전략적 중요성은 높다. 이 곳은 남쪽으로 폴란드, 북·동쪽으로 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서쪽은 바다(발트해)다. 발트해 건너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해 둔 스웨덴과 핀란드가 자리해 있다.

원래 독일 땅…칸트·아렌트·호프만의 고향

칼리닌그라드라고 이름 고치고 독일인을 추방하면서 러시아령이 됐다. [리얼라이프로어 유튜브채널]
칼리닌그라드라고 이름 고치고 독일인을 추방하면서 러시아령이 됐다. [리얼라이프로어 유튜브채널]

이 곳이 러시아 영토가 된 건 80년도 되지 않았다.

원래 독일 땅이었다. 1255년 로마 가톨릭교회에 소속된 기사수도회 튜턴기사단(독일기사단)이 항구를 만든 뒤 독일인이 대거 이주해 살았다. 이후 동프로이센의 주도 쾨니히스베르크로서 수세기 동안 번성을 누렸다.

(왼쪽부터)임마누엘 칸트, 한나 아렌트, E.T.A 호프만
(왼쪽부터)임마누엘 칸트, 한나 아렌트, E.T.A 호프만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와 또 다른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 동화 ‘호두까기 인형’을 쓴 독일 작가 E.T.A 호프만이 이 곳 출신이다. 칸트는 80 평생을 퀴니히스베르크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옛 소련은 독일 영토이던 이 곳을 빼앗았다. 나치 항복 이후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옛 소련에 속한 리투아니아 공화국 땅으로 편입시켰다.

칼리닌그라드라는 이름은 볼셰비키 혁명 당시 러시아 정치인 미하일 칼리닌에서 따왔다. 러시아령이 되면서 많은 독일인들이 쫓겨났고, 러시아인과 벨라루스인 이민자들이 재정착하면서 러시아화했다.

1991년 옛 소련 해체와 함께 리투아니아도 독립했지만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령으로 남았다. 1990년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독일 정부가 소련 영토로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본토를 잇는 육로가 사라져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와 외따로 떨어진 ‘육지의 섬’처럼 됐다.

리투아니아, 화물운송 중단…러시아 '발끈'

칼리닌그라드 화물 열차가 정차돼 있는 모습. [채널4뉴스 유튜브채널]
칼리닌그라드 화물 열차가 정차돼 있는 모습. [채널4뉴스 유튜브채널]

러시아가 EU와 협정을 맺으면서 2003년부터 리투아니아를 통해 칼리닌그라드로 화물을 운송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EU가 러시아 제재에 나서면서 리투아니아는 지난 18일 EU 제재 준수를 이유로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열차 운행을 대폭 줄였다.

당장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21일(현지시간) 성명과 함께 모스크바 주재 EU대사를 불러들여 “EU 행위는 용납될 수 없으며, 화물운송을 즉각 복원할 것”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대응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칼라닌그라드 주지사는 석탄, 금속, 건설자재 등 철도 화물의 50% 가량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전례가 없고 불법이다"고 목소리를 냈다.

러, 보복도발 가능성…푸틴 '수발키 갭' 노림수는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 사이 수발키 갭. [TLDR뉴스 유튜브채널]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 사이 수발키 갭. [TLDR뉴스 유튜브채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비동맹국인 우크라이나 침략전 대응과 달리 나토 회원국인 리투아니아에 대한 러시아 공격이 실현될 경우 조약에 따라 집단 방위에 나설 수 있어 나토와 러시아의 직접 충돌 가능성도 우려된다.

러시아가 보복조치의 일환으로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인근 국가들을 상대로 군사적 도발을 할 가능성, 동시에 칼리닌그라드와 우방국 벨라루스를 육로로 잇기 위한 모종의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외신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에 따르면 러시아군과 벨라루스군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칼리닌그라드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접경지대인 수발키 갭(Sualki Gap)을 돌파해 회랑 육상통로를 만드는 훈련을 수행해 왔다.

수발키 갭은 평탄한 지형에 주민들도 거의 살지 않아 러시아군이 기갑부대로 돌파해 해당 지역을 점령할 경우, 나토가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SZ는 지적했다.

'나토 vs 러시아' 실전땐 러에 '골치' 분석도

칼리닌그라드에 정박돼 있는 러시아 군함들. [리얼라이프로어 유튜브채널]
칼리닌그라드에 정박돼 있는 러시아 군함들. [리얼라이프로어 유튜브채널]

이러한 분석과 달리 칼리닌그라드가 나토와 러시아가 맞붙는 실전에서는 러시아에게 골치만 안길 것이란 시각도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도에서 칼리닌그라드가 고립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러시아군이 대피하기 어렵고, 식량이나 군사 물자 공급도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신미국안보센터의 러시아군 전문가 마이클 코프만은 이코노미스트에 칼리닌그라드를 두고 "러시아 영토에서 이처럼 서방 정보원에게 밀착 감시 당하는 지역은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러시아에 대한 리투아니아와 다른 국가들의 전례없는 조처를 환영한다"며 "우리는 나토를 지지하며 리투아니아를 지지한다. 나토 헌장 5조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철통같다"고 강조했다.

나토 헌장 5조는 회원국간 집단방위에 대한 규정으로 회원국 한곳이 공격을 받을 경우, 나토 전체를 공격한 것으로 간주해 공동 군사대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