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빈민층들의 미국으로의 이주 행렬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국경장벽을 설치하기도 했다.

당시 이런 남미 집단 이주 현상의 중심에서 출간돼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된 책이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남미 최고의 경제학자로 불리는 에르난도 데소토의 ‘자본의 미스터리’이다.

빈곤에서 벗어나는 열쇠로서 재산권을 강조한 에르난도 데소토는 책에서 자본주의가 왜 남미에선 성공하지 못하고 제3세계는 가난을 면치 못하는지, 자본주의가 어떤 나라에선 성공하고 어떤 나라에선 왜 실패하는지를 탐색한다.

1830년대 스페인에서 독립한 남미에선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개혁시도가 네 차례나 있었으나 남미 사람들은 쉽사리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정책을 포기했다. 정책이 통하지 않았고 현실에 맞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다.

이들의 실패는 기업가 정신이나 시장 적응력 부족, 종교적, 식민지 유산 탓으로 여겨졌으며 심지어 국민지능이 지목되기도 했다.그러나 에르난도 데소토는 다른 주장을 펼친다.

제3세계의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건 자본을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소유권과 재산권을 비롯한 재산 체제가 낙후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령 집은 주거 뿐 아니라 임대나 담보와 같은 경제활동을 통해 잉여가치(자본)를 생성해낼 수 있는 자산이다.

그런데 제3세계나 과거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집은 단순히 주거 공간으로서의 의미 밖에 갖지 못한다. 잉여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죽은 재산’인 것이다. 소유권이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전환될 수 없고 거래도 지역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며 대출은 물론 출자수단으로 활용될 수 도 없다. 이곳에선 법망을 이해하고 이를 교묘히 이용할 줄 아는 엘리트 계층만 자산을 자본으로 불릴 뿐이다.

저자는 이런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활성화될 만큼 충분한 자본을 창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본주의에 필수적인 명시화 과정이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난한 나라들도 자산을 이미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자본화하지 못한 데 자본주의 실패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죽은 재산들이 어마머마해서 이를 잘 시스템화하면 잉여가치를 생성해내고 경제흐름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죽은 재산을 살리는 길은 바로 자산의 명시화다. 그럴 경우 계층간 불평등도 완화되고 서구 자본주의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책이 새삼 주목받는 것은 블록체인을 예견했다는 데 있다. 블록체인 전문가들에 따르면, 블록체인은 “ ‘자본의 미스터리’를 디지털화”한 것이다.

즉 블록체인은 무허가, 무형물의 소유권을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도와주며 합법적인 재산 체제가 확립되는 것을 도와주는 기술적 기반이다.

실제로 구 소련 연방 국가들이 자국 국민들의 신분 정보를 블록체인에 심는 데 에르난도 데소토의 노력이 한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자본의 미스터리/에르난도 데소토 지음, 윤영호 옮김/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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