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값, 4주 연속 하락세 이어가
지난주보다 낙폭 2~4배씩 커진 지역도
거래절벽 속 급매물만 간헐적으로 거래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지난해 8월 부부가 같이 영끌해서 8억원대 아파트를 샀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신고가로 남아있어요. 남들은 눌러앉아 살면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당장 수천만원씩 떨어진 호가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죠. 답답한 마음에 매일 들어가서 보던 부동산 애플리케이션도 지워버렸어요.” (서울 성북구 거주 직장인 A씨)
서울에서 한 주 사이 낙폭이 2배로 커진 자치구가 나오는 등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족’, ‘빚투(대출로 투자)족’으로 불린 2030세대가 몰렸던 강북권 위주로 내림세가 두드러지면서 A씨처럼 금리 인상에 집값 하락까지 마주하게 된 이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1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둘째 주(14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0.02% 내려 전주(-0.01%)보다 하락폭이 더 커졌다.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대선을 앞두고 확대된 관망세 등으로 ‘거래절벽’이 심화한 상황에서 지난해 급등했거나 매물이 적체된 단지를 중심으로 가격 조정이 이어지며 서울 아파트값이 4주 연속 하락했다고 부동산원은 설명했다.
서울에선 25개 자치구 중 중랑구(0.01%)를 제외한 모든 곳이 하락·보합세를 나타냈다. 성북구는 지난주 -0.05%에서 이번 주 -0.08%로, 서대문구는 -0.02%에서 -0.08%로 낙폭을 더 키웠다. 이들 지역은 각각 6주, 3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어 종로구(-0.07%), 은평구(-0.06%), 마포구(-0.04%), 노원·강북·중구(-0.03%) 등의 하락폭도 상대적으로 컸다. 강남3구에선 강남구(-0.01%)가 하락 전환했고, 송파구(-0.02%)가 2주 연속 내림세를 보였다. 서초구는 3주 연속 보합을 나타냈다.
최근 추세를 보면 지난해 자금력이 부족한 2030세대들이 ‘영끌’, ‘빚투’로 공략했던 지역들이 더 출렁이는 모습이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10채 중 4채(41.7%)는 2030세대가 사들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의 매입 비중이 40%를 넘은 곳에는 노원구(49.3%), 서대문구(46.8%) 등이 꼽혔다. 대체로 9억원 이하 아파트가 많아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하고 전셋값 비중이 높아 갭투자가 용이한 지역 위주로 매수세가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매매시장이 위축되면서 거래가 주춤하고, 급매 위주로만 간간이 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이들 지역에선 지난해 최고가보다 ‘억’대로 떨어진 실거래가도 하나 둘 나오고 있다. 서대문구 냉천동 ‘동부센트레빌’ 84㎡(이하 전용면적·8층)은 지난달 26일 9억500만원에 손바뀜했다. 이는 지난해 9월 최고가(10억4000만원·6층)보다 1억3500만원 떨어진 가격이다. 홍제동 ‘홍제삼성래미안’ 60㎡(6층)도 지난달 12일 7억2000만원에 팔렸는데, 지난해 9월 거래건인 8억4800만원(9층)과 1억2800만원 차이가 난다.
서대문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거래가 거의 안 되는 상황에서 간혹 거래된 급매가 실거래가로 찍히다 보니 먼저 집을 산 사람들 입에선 ‘사놓고 보니 상투’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면서 “어떻게든 돈을 끌어모아 집을 마련한 사람 입장에선 불안한 것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시장은 내달 9일 대선 이후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거래량이 일정 수준 회복됐을 때 일시적 조정인지 대세 하락장인지 방향성이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올해 1월 매매거래량이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이번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부동산 세금·대출 등에서 큰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적극적인 매도·매수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봤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현재는 급매물을 바탕으로 가격 지표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대선 이후 매매거래가 활성화돼야 시장의 방향성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