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MBC ‘스트레이트’ 방송금지 가처분 일부 인용
수사 관련 발언·사적 대화 등 제외한 부분 방송 허용
“대화내용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국민의힘 ‘초긴장’
강경대응에 오히려 여론 관심 집중…‘역효과’ 지적도
“정제 안 된 발언, 표심 영향”…尹 지지율 파장 불가피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또다시 ‘김건희 리스크’의 늪에 빠졌다. 이번엔 윤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와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기자 사이 ‘7시간 통화 녹취록’이 문제다. 가까스로 반등세에 접어들며 이재명 민주당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좁히기 시작했던 윤 후보로서는 예상치 못했던 돌발 악재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김 대표의 사과로 일단락되는 듯 했던 허위경력 의혹을 재차 제기하며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당분간 ‘김건희 리스크’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지속될 전망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합의21부(수석부장판사 박병태)는 지난 14일 김 대표가 제기한 MBC ‘스트레이트’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방송 예정 내용 중 김 대표 관련 수사 중인 사건 관련 발언, 언론사에 대한 불만 표현, 정치적 견해와 관련 없는 사적 대화 등을 제외한 부분의 방송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MBC는 오는 16일 오후 8시20분 ‘스트레이트’에서 김 대표와 ‘서울의소리’ 이모 기자와의 통화 녹취록을 방송할 수 있게 됐다. MBC는 법원 결정 직후 “결정문을 보고 방송 여부 및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앞서 ‘서울의 소리’측은 김 대표가 해당 기자와 지난해 8월 초부터 6개월간 모두 53차례, 7시간 45분 분량의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녹취록 방송을 사실상 허용하면서 국민의힘은 잔뜩 긴장한 상태다. 법적조치에 이어 전날 MBC를 항의 방문까지 하며 방송 저지 총력전을 펼쳤지만 방송을 막지 못했다.
법원이 일부 발언을 제외토록 했다고 해도 방송에 어떤 통화내용이 담길지, 또 김 대표의 발언이 어떤 파장을 가지고 올지 쉽사리 예단하기 힘들다. 대화 분량은 방대하지만, 정작 김 대표는 녹취록을 가지고 있지 않는 만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김 대표 측과 국민의힘이 “강경 대응이 오히려 일을 키운다”는 지적에도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또, 김 대표와 기자와의 통화가 통신비밀보호법상 금지된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가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온 만큼, ‘서울의소리’가 유튜브 등을 통해 통화내용을 공개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7시간이 넘는 통화 중 어떤 말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깜깜하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김 대표의 가처분 신청과 국민의힘의 강경 대응은 일종의 ‘스트라이샌드 효과(어떤 정보를 숨기려는 행동이 오히려 이슈를 만들어 정보의 확산을 가져오는 역효과)’를 가져온 셈이 됐다. 김 대표의 통화 내용에 순식간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여의도 안팎에서는 통화 내용의 일부로 추정되는 발언이 ‘쪽글(지라시)’ 형태로 떠돌았다.
급기야 법원 결정이 나온 후에는 김 대표가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던 발언이 담긴 ‘별지’ 형태의 법원 결정문이 취재진에 유포되기도 했다. ▷MBC에서 반론을 요청했던 3개 발언 ▷‘쪽글’로 유포된 6개 발언 등이다.
이에 대해 이양수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수석대변인은 “김 대표가 수개월 전 발언을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 없어 예비적으로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것”이라며 “쪽글로 돈 6개 발언의 경우 그와 같은 발언이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일단 가처분 신청 범위에 포함시킨 것으로, 실제 발언 내용과는 다를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MBC측 변호인이 법원 결정문을 유포했다며 이에 대한 법적 대응도 예고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유출된 별지의 출력자가 MBC의 변호인으로 돼있어 유출자가 특정된다”며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으로 방송을 할 수 없는 부분을 외부에 유포함으로써 공직선거법위반(후보자비방죄), 명예훼손,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가처분 인용 결정 무력화에 따른 법적 책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MBC가 법원 결정까지 무시하고,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되는 내용까지 유포한 것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별지 내용들은 실제 발언 내용과도 다른 소위 ‘쪽글’에 나온 것들인데, MBC의 유출로 인해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며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즉시 형사고발 및 민사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의 통화내용이 어떤 형태로든 방송되거나 유튜브에 공개될 경우 윤 후보의 지지율 역시 출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내용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대선 후보 부인으로서 김 대표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 자체가 표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달 중순 불거졌던 김 대표의 허위 이력 의혹 역시 윤 후보의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타이밍도 좋지 않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급상승하며 ‘3자 구도’가 형성된 데다, 반등세에 접어든 윤 후보가 설 명절까지를 ‘골든타임’으로 잡고 2030 청년층을 겨냥한 정책공약을 쏟아내며 지지율 회복에 안간힘을 쓰는 도중이었다.
민주당이 법원 결정을 환영하고 나선 것도 ‘김건희 7시간 통화’가 윤 후보의 추격을 뿌리칠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승래 민주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법원이 방송 금지 청구를 사실상 기각한 것은 국민 상식에 부합한다”며 “윤 후보 부부와 국민의힘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공개되는 김건희 씨의 발언 내용에 대한 국민적 판단 앞에 겸허하게 임하기 바란다. 그것이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했다.
반면, 전날 경남 창원을 찾은 윤 후보는 법원 결정이 나오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의 7시간 통화 논란에 대해 “지금 제가 언급할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