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분개하면서 한편으론 의문을 갖게 된다. 극악무도한 악행으로 타인의 삶을 짓밟는 이들은 전혀 다른 인간일까? 한나 아렌트는 그런 인간 역시 평범한 우리와 같다고 말하지만 심리학자 존 M.렉터는 좀 다른 입장을 보인다.
마하트마 간디와 연쇄 살인마 제프리 다머, 넬슨 만델라와 아돌프 히틀러, 테레사 수녀와 스탈린은 분명 다르다. 이는 각 개인이 자기 자신 및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탁월한 연구에 따르면, 다름의 본질은 타인을 ‘대상화’하느냐에 있다.
대상화란 타인을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존경과 공경을 받아야 마땅한 통합된 주체가 아니라 사물로 인식하는 것이다.
렉터의 역작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교유서가)는 악에 대한 그의 오랜 탐색과 연구의 결정판으로 대상화란 개념을 통해 악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다.
저자는 대상화를 ‘플라톤의 동굴’로 해석한다. 즉 타인을 대상화할 때, 우리는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 보듯한다. 타인이 미묘한 차이나 개성, 무엇보다 중요한 깊이도 갖고 있지 않은 일차원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대상화는 경계인식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경계를 설정하는 능력을 통해 자기를 외부와 분리된 별개의 개체로 인식한다. 이는 건강한 정서적 능력이지만 자아의 형성을 초래하는 직접적 원인이기도 하다. 자아는 종종 타인을 배제한다.
저자는 인간이 타인을 대상화하는 경향에 영향을 미치는 기질적 요인과 직접적인 상황적 요인 등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가령 두려움, 나르시시즘, 영웅주의 등은 대상화를 강화한다.
사물에 대한 애착, 소유도 대상화를 가속화한다. “삶을 평가하는 기준을 소유와 동일시할수록 자아의 영향과 세상을 대상화하는 경향에 더 쉽게 좌우되며, 이에 따라 우리 자신과 타인의 본질은 흐려진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타인을 우리의 필요, 욕구, 두려움, 소망에서 파생한 한낱 대상으로 간주하는 일 역시 매우 흔하다. 대상화는 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저자는 대상화에서 빠져나오려면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을 나에서 가족으로, 이웃으로 점차 넓혀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은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대상화'를 개인적 경험과 대중에게 친숙한 사건을 통해 손에 잡히게 설명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존 M.렉터 지음,양미래 옮김/교유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