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입고도 맨손대치 이명은씨 경찰 올 때까지 끝까지 중재나서 “방관한 시민·경찰관 비난보다 시스템 해결하는데 도움 됐으면”
“선생님, 진정하세요. 진정하시고 나오세요.”
지난 13일 오후 7시께 서울 지하철 암사역 3번 출구 앞 인도에서 발생한 일명 ‘암사역 칼부림’ 사건은 우리사회에 두번의 실망감을 안겼다. 칼에 찔린 피해자를 지켜보고만 있던 주변 사람들에 한 번, 테이저건조차 제대로 쏘지 못하는 경찰의 미숙한 대응에 두 번.
하지만 아수라장 같은 현장에서도 자기 자신보다 주변을 먼저 생각하는 숨은 의인이 있었다. 주인공은 직장인 이명은(28·사진) 씨다. 사건 당일 이 씨는 단골 빵집에서 크림빵을 사서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평범한 퇴근길이 될줄 알았던 그날, 이 씨는 멀리서 들리는 웅성거림을 들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에선 드럭스토어 앞에 쓰러져 맞고 있는 누군가의 실루엣을 봤다. 암사역 칼부림 사건의 피해자인 박모(19)군을 한모(19)군이 폭행 하는 상황이었다.
“진정하세요. 흥분하신 것 같으니 진정부터하세요“. 이씨는 한달음에 달려가 칼을 든 한군을 제압하러 나섰다. 그를 움직인 건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닌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었다.
그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길바닥에 쓰려져 얼굴을 밟힌 피해자를 보고 ‘다른 곳도 아닌 사람 얼굴을 저렇게 밟으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몸부터 움직였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싸움이 나면 항상 가서 말리는 ‘오지랖’”이라는 이 씨지만 칼까지 들고 싸우는 현장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한군 손에서 칼을 빼앗아보려고 시도하다 손끝에 부상도 입었다. 그래도 경찰이 올때까지 버텼다. 쉽사리 흉기를 빼앗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자 “경찰 올 때까지만 진정이라도 시켜보자”는 생각으로 시간을 끌었다.
혼자 나선 이씨에겐 10분도 1시간 같았다. 당시 현장에는 이 씨를 제외한 수많은 시민들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선 것은 이 씨 혼자였다. 박 씨가 맞고 있던 가게 안에는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손님들이 가득했지만, 현장을 촬영한 영상엔 밖에서 유리문을 열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버티고 선 손님들의 모습만이 찍혔다.
해당 영상이 공개된 후 방관하는 시민들을 향한 비난도 폭주하는 상황에서 정작 이 씨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칼 든 사람을 보면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며 “그분들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당시 현장에서 도와주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던 시민들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학생 하지마 하지마’ 하며 말리려던 아주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위험하실 것 같아 일찌감치 뒤쪽으로 안내했다. 칼을 보고 발길을 돌리긴 했지만, 싸움을 말리려고 다가왔던 아저씨도 한분 계셨다”고 말했다.
그가 유일하게 아쉬움을 드러낸 대목은 경찰의 미숙한 대응을 낳게 한 시스템이다. 이 씨는 “경찰만 오면 다 해결될거라 믿고 기다렸는데, 뒷걸음질 치는 모습에 실망도 했다”며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오히려 못 나서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했다. 이어 “현장에 출동한 경찰 개인보다는 테이저건의 한계를 시스템적으로 보완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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