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흑자 바탕 ‘외환 보유액’늘고 ‘외채구조’안정적 상황으로 진입
저출산·고령화로 노동인구 감소 조선·철강 등 舊산업 이미 ‘한계’ 국가·가계 부채도 ‘악순환’ 근원
인재육성·M&A로 신산업 키우고 노동·투자등 경제요소 개혁 절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외풍을 막아낼 방파제는 충분히 높이 쌓았지만, 더 나은 내일을 담보할 경제활력 제고와 산업·생산성 혁신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밖으로부터의 위협보다는 안으로부터의 붕괴가 더 치명적이라는 진단이다.
당장 겨우 3%에 턱걸이 한 경제성장률과 정체된 가계소득을 반등시키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꺾인 혁신의지를 회복하는 게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없이 늘고 있는 정부 재정지출도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산업혁신 및 모험자본 확대를 유도할 규제개혁, 지속가능한 재정정책 수립, 인재육성 체계개편 등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다음 위기는 외환(外患)보다 내우(內憂)=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 경제가 과거 다시 시스템 측면의 금융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은 작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연구실장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모두 외화유동성 부족 탓에 촉발된 측면이 있다”며 “현재는 몇 년 전부터 이어진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상당히 안정적인 외화유동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박재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외환보유 현황이나 외채구조가 안정적”이라며 “과거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내부다. 날갯짓을 막는 가장 무거운 추는 저출산·고령화의 심화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경제가 성장하려면 자본과 노동이 공급돼야 하는데, 저출산·고령화 탓에 노동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노동수요가 공급을 압도할 것”이라고 했다.
송 부원장은 이어 “그럼에도 노동생산성과 유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인구학적 측면과 생산역량 측면 양쪽 모두에서 성장잠재력 저하를 막을 방도가 없다”고 덧붙였다.
조선, 철강 등 주력산업의 쇠락이 가시화하는 가운데, 이를 대체할 신(新)산업 혁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심각한 약점이다. 과도한 규제 탓에 창의적 인재육성·대기업의 벤처기업 투자 및 인수합병(M&A)·모험자본 활성화 등 세 가지 ‘신산업 진입로’가 모두 막혀 있다”는 게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의 지적이다.
나란히 늘어나는 국가와 가계의 부채도 장기적으로 미래 세대의 짐을 늘리고, 단기적으로 소비를 짓누르는 ‘악순환’의 근원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해외 중앙은행 관계자들이나 경제전문가들을 만나보면 당장 우리나라 경제를 걱정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중장기로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2.8% 밖에 안되는 경제성장률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든 것인데, 단지 3% 성장률을 넘겼다고 기뻐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노동과 자본, 재정의 효율적인 투입 없이는 더 이상 (경제를) 끌고 가기 어렵다”고 했다.
▶규제·투자·교육·노동 전방위 개혁 절실=전문가들은 실타래처럼 얽혀 악효과를 부추기고 있는 각 경제요소의 개혁이 절실하다고 촉구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와 노조의 영향력이 강한 우리 경제 시스템은 자본과 기업의 경직성이 높다”며 “이런 식으로 기업과 개인에 ‘현상유지만 잘하자’는 인식이 확산하다보니 삐그덕거림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오 교수는 “지나친 내부거래 규제 탓에 대기업의 벤처기업 M&A 소구가 매우 낮다. 벤처기업이 어느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대기업에 피인수돼 투자자들의 자금회수를 돕고, 이런 환경이 다시 재투자·재창업을 촉진하는 연쇄혁신이 일어나도록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와 송 부원장은 “저출산·고령화로 노동공급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배분’이 관건이 될 수 밖에 없다”면서 “진보적 성격을 가진 이번 정부가 오히려 먼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노동 문제에 있어서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가와 가계의 부채가 급증에 따른 재정의 효율적인 배분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 실장은 “재정 불균형이 큰 문제이긴 하지만, 인구학적 특성상 (재정확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재정이 어떤 편익과 수익을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성 교수도 “재정은 민간부문의 고용 등 이른바 ‘승수효과’를 낼 수 있는 곳에 선별적으로 투입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외에 평준화 교육의 폐해 극복을 위한 수월성 교육의 복원(오정근), 사회에 만연한 안정지상주의 혁파를 위한 도전욕구 제고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슬기 기자/yesyep@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