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승인 관건 ㆍ北 리스크에 쉽지 않을 듯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새로운 국면에 처했다. 이 협정을 ‘재앙’이라고 언급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폐기(Withdrawal)’라는 초강수 압박 카드를 꺼내 든 때문이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의가 양국의 견해차만 확인한 채 결렬된 지 불과 열흘 만의 일로 향후 협상에 적잖은 파문이 예상된다.
한미간 공동위 첫 회의 후 미국 언론들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보도했었다.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가 두 배로 늘었다며 조속한 개정 협상을 요구했으나 한국이 적자의 원인부터 조사하자며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개정 압박용으로 ‘폐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통상 전문가들은 미국 국내 법상 트럼프 대통령이 단독으로 한미 FTA 폐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북한의 핵 도발로 한미 대북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우리와 무역전쟁을 치르기가 부담스럽다는 주장이다.
4일 한미 FTA 이행법 107조에 따르면 협정이 폐기되는 날에 이행법과 이행법으로 인한 법 개정의 효력이 중단된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폐기 결정만으로 의회가 고유 권한으로 통과시킨 법안을 자동 폐기하기가 위헌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론적으로 의회가 대통령의 일방적인 한미 FTA 폐기에 반발해 효력이 중단된 한미 FTA 이행법을 다시 살리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미 의회 상원 재무위원장과 하원 세입위원장 등 무역협상 관련 상임위원회 의원들은 지난 7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 대표부(USTR) 대표에 보낸 서한에서 의회와 긴밀한 협의와 신중한 협상을 요청한 바 있다. 특히 이들은 한미 FTA 개정협상을 통해 발생하는 어떤 변화도 의회의 위임을 받지 않거나 의회가 법규를 재정하지 않고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또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최고조에 다다른 점도 트럼프 행정부에 적지 않는 부담인 상황에서 한미 FTA를 폐기할 경우, 양국 동맹 관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폐기를 거론한 것은 현재 미국이 캐나다ㆍ멕시코와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협상에서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미국 정부는 내년 중간선거 전에 NAFTA, 한미 FTA 등 통상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재협상을 서두를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는 안보·북핵 이슈와 맞물려 대미 협상력이 떨어지기 쉬운 만큼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 한 관계자는 “정부는 국익과 국격을 위해 당당하게 한미FTA 협상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고 지금도 그 입장 그대로”이라며 “여러 가능성을 모두 열어 놓고 철저하게 대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만약 앞으로 미 정부가 한미FTA 폐기 절차에 돌입한다면 한국 측에 종료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협정문(제24조)에 따르면 한미FTA는 어느 한쪽의 협정 종료 서면 통보로부터 180일 후에 종료된다. 만약 한국 정부가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 우리 측은 서면 통보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양국은 요청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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