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문재인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22일 국회를 통과했다.여야의 이견 속에 총 규모는 정부제출안보다 1500억원 가량이 깎였다.
추경안을 제출한 지 45일 만이다. 2008년 추경 이후 통과에 가장 긴 시간이 걸리면서 추경의 생명인 ‘신속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0년 이후 가장 오래 걸려=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11조333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2000년대 들어 다섯 번째로 오랫동안 국회에 계류된 추경안으로 기록됐다.
추경은 정부의 본예산보다 돈이 더 필요할 때 편성하는 예산으로, 국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편성 요건에도 맞아야 한다.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 발생, 경기침체·대량실업·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 등 대내외 여건의 중대한 변화, 법령에 따른 국가 지출 발생·증가 등이다.
하지만 추경은 수시로 편성됐다. 2000년 이후 추경은 없었던 해는 2007년, 2010∼2012년, 2014년 등 다섯 해에 불과했다. 2001년과 2003년에는 각각 한 해에 두 차례 추경이 편성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의 1년에 한 차례 편성됐다.
이번 추경안은 ‘일자리’를 전면에 내세운 첫 추경이라는 특징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당선되면 임기 안에 일자리 81만개를 창출하겠다면서 그 첫 단추로 즉시 10조원 이상의 일자리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당선 후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 상황 점검을 지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 발맞춰 정부는 지난달 7일 11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무원 1만2000명을 포함한 공공부문 일자리 7만1천개, 고용서비스와 창업지원 등을 통한 민간 일자리 3만9000개 등 11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국무위원 임명·공무원 증원에 ‘스텝 꼬인’ 추경안=정부는 6월 임시국회 회기 안에 추경이 처리되면 이르면 이달 집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다만 여소야대 형국에서 일자리 추경안이 쉽게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듯 문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추경 편성 협력을 야당에 당부했다.
경제수장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식을 하기도 전에 국회부터 찾아가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야권은 추경이 국가재정법상 ‘대량실업’이라는 편성 요건에 맞지 않고 공무원 증원 항목이 장기적으로 재정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보이콧’까지 선언했다.
매번 논란이 되는 추경 편성 요건과 관련, 이번 기회에 국가재정법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김 부총리는 “논란이 많다 보니 (추경 요건) 정비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 같은데 국회에서 논의하면 정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좋은 방향으로 할 수 있도록애쓰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보이콧 이후에도 송영무 국방장관 등 주요 국무위원 임명,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 등으로 여야의 냉각 기류는 계속됐다.
결국 추경안은 국회 제출 한 달이 넘은 지난 10일에서야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상정됐다.
이후 진통을 이어가다가 지난 14일, 제출된 지 37일 만에 여당 의원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첫 심사가 열렸다.
예결위는 15일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 추경안을 넘겼다. 하지만 야 3당이 80억원에 달하는 공무원 증원 예산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다. 그 사이 청년 고용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난달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10.5%로 동월 기준으로 18년 만에 최고 기록을 다시 썼다.
아울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2%포인트(p) 상향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추경의 효과가 더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 기재부 예산실의 내년 예산 심의 시점(6∼8월)과 추경안 장기 표류가 겹치면서 지장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공무원 증원 규모 줄여 1500억원 감액해 겨우 통과=여야는 합의한 7월 임시국회 본회의 날인 18일까지 추경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회기 자체는 다음 달 2일까지라 여야 합의로 본회의 일정을 잡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지지부진한 논의는 계속됐다.
결국 21일 오후,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3당이 공무원 증원 수를 줄이기로 합의하면서 추경안은 급물살을 탔다.
이어 이날 수정된 추경안이 새벽 예결위를 통과하고서 오전 열린 본회의도 진통끝에 통과됐다.
여야는 정부안(11조1869억원)보다 1536억원 가량 감액된 11조333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확정했다. 정부안에서 1조2816억원을 감액하는 한편 1조1280억원을 증액했다. 쟁점이 됐던 중앙직 공무원 증원 규모는 정부안 4500명에서 2575명으로 줄였고, 증원 예산 80억원은 삭감하고 정부 목적 예비비에서 지출하기로 했다.
반면 가뭄 대책 1027억원, 평창올림픽 지원 532억원 등은 정부안보다 늘었다. 국회에 가로막혀 45일이 걸린 이번 추경도 그 특성인 ‘신속성’을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2000년 이후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의 평균 처리 기간은 37.3일이었다.
이번 추경안은 45일이 걸려 평균 대비 한 주 이상 더 걸린 셈이다. 통과에 90일이 걸린 2008년 추경 후 가장 긴 시간이 걸렸다.
2000년대 들어 국회 통과에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된 추경안은 2조3000억원 규모의 2000년 추경안이다. 저소득층 생계안정을 목적으로 편성된 이 추경안은 국회 제출에서 처리까지 106일이나 소요됐다.
이번 추경안은 가장 최근이었던 작년 추경보다 한 주 더 걸렸다. 작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와 기업 구조조정 영향 최소화를 위해 편성한 11조원 규모의 추경안은 통과에 38일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