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함에 따라 선거 과정에서 밝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현실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는 선거기간 내내 아직 발효되지 않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FTA 등 미국이 체결한 모든 무역협정을 재협상 또는 폐기하겠다는 방침을 수차례 밝혔다.
특히 한미 FTA에 대해서는 “힐러리 클린턴이 주도한 한국과의 무역협정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일자리 10만 개를 빼앗겼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그러나 국내 통상전문가와 정부 관계자들은 9일 “한미 FTA 원점 재협상이나 폐기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FTA는 양국이 이익의 균형을 맞춘 뒤 상호 호혜적으로 맺었기 때문에 일단 발효한 뒤에는 일방적으로 무효로 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상적인 외교 관계 속에서 한쪽이 일방적으로 FTA를 폐기한 사례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FTA라는 것은 단순한 경제협정이 아니라 정치, 외교 등과 민감하게 맞물린 중요 사안”이라며 “발효된 FTA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갑자기 무효로 한다는 것은 상대국과 앞으로 아예 보지 말자는 말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존 FTA 협정을 무효로 하고 다시 협상한다는 것은 상대국과 정치ㆍ외교적 관계를 단절하는 상황에서나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상 공약에서 비중 있게 언급한 한미 FTA 재협상을 실제로 요청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간 막무가내식으로 각종 공약을 남발한 트럼프의 스타일을 고려하면 국제 외교 관례를 깡그리 무시하며 정책을 집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는 어떤 방식으로 한·미 FTA를 개선할지에 대해서는 밝힌 바가 없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사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크게 보지 않았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빚어진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FTA 재협상 요청이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재로써는 상황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다른 모든 FTA와 마찬가지로 한미 FTA에도 협정 종료에 대한 조항은 있다.
한 나라가 상대국에 협정 해지를 희망한다고 서면으로 통보하면 180일 이후에 종료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상대국은 180일 이내에 협의를 신청할 수 있다.
사실 이 조항은 실제 활용 가능성이 거의 없는 형식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FTA에는 발효 관련 규정이 있어서 짝을 맞춰 종료 조항도 함께 담아 놓는 것일 뿐이라는 게 통상 분야 전문가의 설명이다.
설사 트럼프가 한미 FTA 폐지를 추진한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권한이 있느냐도 논란이 될 수 있다.
미국은 FTA 같은 관세 관련 협정 체결에 대한 권한은 헌법상 대통령이 아닌 의회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관련 권한을 위임받은 뒤 실무 협상에 나서고 있다.
행정부가 협상을 마무리 지으면 의회 비준을 거쳐 FTA가 정식으로 체결된다. 이후 미국은 국내에서 이행 법안을 만들어 관련 내용을 처리하는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협정 폐지 절차에 대한 규정은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협정 체결 권한이 있는 의회의 동의 없이 FTA를 폐지한다면 법적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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