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함께 보내온 시간, 1만 950일. 이승철의 아홉살 난 딸은 아빠의 지난 30년을 날수로 헤아려줬다.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만 일이 넘은 지금에서야 노래가 뭔지 알게 됐어요.”
한 가지 일을 시작해 경지에 오르기까지 1만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30년간 한결같은 목소리를 유지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부적 보컬 재능을 가진”(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가수로 평가받고 있다.
가수 이승철(50)이 26일 서울 용산구 더줌아트센터에서 데뷔 30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음악인생을 돌아봤다.
1986년 밴드 부활의 보컬로 데뷔했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 ‘희야’ 등의 히트곡이 담긴 부활 1집은 13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파란을 일으켰다. 이승철에게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하다가 부활을 만나 자취방에서 방바닥을 두드리며 ‘희야’를 만들었던 기억”은 30년 음악인생의 가장 큰 추억이다.
불과 1년 6개월, 단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한 부활 활동을 마감한 뒤 1985년 솔로로 전향,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이후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방황’, ‘오늘도 난’, ‘오직 너뿐인 나를’,‘시간 참 빠르다’에 이르기까지 30~40여개 달하는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이승철은 30년간 정상을 지켰다.
이승철은 “그동안은 음악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며 “지금은 편안하게 음악을 들려 드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성적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지고, 무대에서 무아지경에 빠져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30년간 단 한 번도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고 했지만 그의 음악인생엔 굴곡도 많았다. 뮤지션과 연예인의 경계에서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됐다. 두 번의 대마초 사건(1989, 1990년)에 연루됐다. 그는 “질타도 많이 받았던 연예인으로의 삶은 힘들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지탱해준 건 “늘 음악이었다”고 이승철은 돌아봤다.
스스로를 “태생적인 딴따라”라고 부르는 그는 대중의 감성에 맞닿은 ‘대중가수’다. 이승철은 “전 연령대의 팬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나의 발라드는 패션이다. 작곡가들에 따라 스타일을 바꿔 내 느낌에 맞는 노래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향후 30년은 ‘음악의 힘’을 나누는 데 집중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미 교도소 재소자, 탈북 청년, 대안학교 청소년의 합창단을 지휘했고, 아프리카 차드에 학교를 짓는 등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해마다 30회씩, 30년간 2000여회의 공연을 해왔지만 “앞으로의 30년은 대한민국 방방곡곡,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까지 직접 찾아가겠다는 계획이다. “제 몸이 허락하는 한, 찾아가는 콘서트를 하는 것이 마지막 꿈이에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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