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인공지능(AI) 투자 열기가 식을 경우 한국 증시가 미국·대만 등 주요 시장보다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블룸버그의 분석이 나왔다. 이미 레버리지 투자 부담과 AI 산업의 성장성·수익성 재평가가 맞물리며 조정을 겪고 있는 코스피가 AI 인프라 투자가 1년간 중단되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분석 모델에서도 대만과 더불어 최대 타격을 받는 국가로 지목된 것이다.
금융투자협회는 4일 톰 오를릭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초청해 ‘미국 중간선거 이후 경제 전망’ 웨비나를 개최했다. 이날 오를릭이 블룸버그의 시나리오 분석 도구인 ‘글로벌 쇼크(Global Shock)’를 활용해 AI 투자 거품 붕괴 상황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GDP 감소폭은 기준 전망 대비 약 3%, 대만은 약 5%로 추산됐다. 미국 증시가 20% 하락하고 신용스프레드가 확대되는 가운데 데이터센터 투자가 1년간 중단되는 상황을 가정한 분석 모델을 동원한 결과다.
오를릭은 AI 산업에 대한 시장의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환경이 향후 AI 투자 열기를 위축 시키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과거에는 AI 성장 가능성만 보고도 관련 종목 전반에 매수세가 유입됐지만 최근에는 대규모 투자에 걸맞은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설명이다. 오를릭은 “투자자들이 AI 관련 종목을 가리지 않고 매수하던 단계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막대한 자본지출이 실제로 어디에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따지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오를릭은 향후 AI 반도체 공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미국 내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를 언급했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물을 소비해 지역사회의 비용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공감대를 가진 부분인만큼 선거 이후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오를릭은 “미국 양당 모두 데이터센터가 지역사회에 들어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며 “데이터센터 건설이 집중된 지역의 주지사들이 선거 결과를 정치적 신호로 받아들여 새로운 제한을 도입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 국가로 부각된 한국과 대만은 데이터센터 규제 관련 위험성에 특별히 취약하다는 게 오를릭의 관점이다. 오를릭은 “한국과 대만의 첨단 반도체 기술은 AI 혁명이 빠르게 진행되는 중요한 배경이었지만 AI 호황이 붕괴로 전환될 경우 두 나라의 타격도 그만큼 클 것”이라며 “데이터센터 투자가 위축되면 반도체 수요와 수출에도 충격이 번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규제 강화가 데이터센터 수요의 급격한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도 뒤따랐다. 이날 웨비나에 참석한 권효성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한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규제가 강화되면 데이터센터 부지를 대안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려만큼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속도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며 “반도체 수요 자체는 당분간 꽤 견조할 것으로 예상하나 이같은 변화가 주식시장와 투자 심리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날 오를릭은 AI 데이터센터 우려와 별개로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금융시장 전반에는 우호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짚었다. 과거 중간선거 이후 미국 증시가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여야가 권력을 나눠 갖는 분점정부가 형성될 경우 정책 변화와 규제 불확실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를릭은 “1950년 이후 미국 중간선거 역사를 보면 선거 다음 해에는 S&P500이 상승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정치적 교착 상태가 새로운 규제와 세금 도입을 제한하면 금융시장에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중간선거 이후 시장을 좌우할 변수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경로도 언급했다. 이란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움직임과 AI 자산 가격의 향방에 따라 연준의 금리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오를릭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상승하고 AI 자산 가격이 견조하게 유지될 경우 연준이 12월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지만, 전쟁 긴장이 완화돼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로 하락하고 AI 시장이 안정세를 유지하면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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