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 무료 급식소서 목격된 ‘남초’

한국 고령여성 상대적으로 더 빈곤한데

무료 점심에는 할아버지들만 몰려들어

고령 여성 시간제 근로자, 남성의 2.4배

“어딘가에서 일하며 끼니해결하는 듯”

국내 노인의 소득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7배에 달한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 노인의 삶은 더 곤궁하다. 여성 노인들은 오랜 시간 ‘가족 돌봄’에 헌신하길 요구받았고 집 밖에서의 경력을 내려놔야 했다. 이 경력 단절은 그들에게 직업인으로서 존재감을 옅게 만들었고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했다. 나이 든 그들은 매일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헤럴드경제는 여성 노인의 젊은 시절 헌신이, 시간이 지나 가난과 불안으로 ‘청구’되는 구조를 조명했다. <편집자 주>

27일 오전 11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원각사 무료 급식소에 점심 식사를 위해 어르신들이 차례대로 입장하는 모습. 정주원 기자
27일 오전 11시 30분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원각사 무료 급식소에 점심 식사를 위해 어르신들이 차례대로 입장하는 모습. 정주원 기자

[헤럴드경제=정주원·김도윤 기자] 27일 오전 11시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편 무료 급식소 앞. 점심 배식을 시작하는 시간은 30분 남았지만, 어느새 모여든 노인들이 100m 장사진을 만들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거나 길가에 앉아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줄을 선 65명 가운데 여성은 단 3명이었다. 오전 11시30분 배식이 시작될 무렵 대기자는 100여명으로 불었지만 여성 노인은 2명 더 느는데 그쳤다.

같은 시간, 몇 걸음 떨어진 낙원상가 앞도 비슷했다. ‘하늘궁 무료 급식소’ 측이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으려고 70~90대 노인 300명 가까이 몰렸지만 대기줄에 선 여성은 20명쯤이었다. 여기서 받은 도시락을 들고 다시 원각사 무료 급식소 줄에 서는 노인들도 보였다. 한 노인은 “원각사에서 점심을 먹고 도시락은 저녁으로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은 급식소에서 친구를 사귀고 정보를 나눈다. 밥을 먹고 나선 탑골공원이나 청계천을 걷거나 저렴한 다방과 영화관에서 소일한다. 취재팀이 만난 노인들은 “추운 날에는 1000원짜리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심심하면 2000원짜리 영화관에 간다”고 했다.

27일 오전 12시께 원각사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 중인 어르신들의 모습. 여성 노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정주원 기자
27일 오전 12시께 원각사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 중인 어르신들의 모습. 여성 노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정주원 기자

혼자 사는 박모(85) 씨도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다. 박씨는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유독 남성들이 많이 보인다고 기자가 말하자 “할머니들도 혼자 사는 사람이 많을 텐데 왜 없는지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3년재 무료급식소 봉사를 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매일매일 방문자 수가 다르지만, 평균 400~500명 정도가 오는 것 같다”며 “이 중 많은 날이어야 20% 정도가 여성”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노인들은 가난하다. 특히 고령 여성의 경제적 처지는 더 나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6월 내놓은 ‘고령 여성 노후소득 현황과 취업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60~79세 고령 여성 개인소득은 남성의 40.4%에 그친다.

그럼에도 무료급식소에는 왜 유독 고령 남성이 더 많을까. 현장에서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와 전문가들의 진단을 종합했다.

큰할머니들, 무료 급식소 대신 일터에

경제적 형편만 보면 궁핍한 여성 노인들 입장에선 무료급식소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실태조사’를 보면, 활동비를 받은 뒤 식비에 주로 쓴다고 응답한 노인 비율은 2022년 66.4%에서 2025년 78.6%로 늘었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식비와 보건의료비에 활동비를 쓰는 비중이 높았다. 여성 노인의 빠듯한 경제적 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원각사 무료 급식소 내부에 있는 달력. 10월의 일별 방문자 수, 메뉴 등이 적혀 있다. 급식소 관계자에 따르면 날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약 500명이 이곳을 매일 방문한다. 이 가운데 여성 방문자의 비율은 10~20% 정도라고 한다. 정주원 기자
원각사 무료 급식소 내부에 있는 달력. 10월의 일별 방문자 수, 메뉴 등이 적혀 있다. 급식소 관계자에 따르면 날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약 500명이 이곳을 매일 방문한다. 이 가운데 여성 방문자의 비율은 10~20% 정도라고 한다. 정주원 기자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 노인이 무료 급식소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로 노동을 꼽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긴 시간 줄을 서기보다 어딘가에서 일을 하거나 집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거나 거르는 여성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는 고령 여성의 노동이 남성보다 비정규·시간제에 더 집중돼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데이터처가 집계한 ‘2026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여성 임금근로자 230만6000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180만6000명으로 78.3%를 차지했다. 같은 연령대 남성은 임금근로자 221만7000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137만4000명으로 62%였다. 특히 시간제 근로를 하는 60세 이상 여성은 140만4000명으로 남성(58만9000명)의 2.4배에 달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정모(63·여) 씨도 “일주일에 많아야 한두 번밖에 못 온다”며 “나머지는 일하러 나가야 해서 보통 점심은 거른다. 여기까지 와서 밥 먹는 게 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무료 급식소에서 여성이 적게 보인다고 해서 여성 노인의 빈곤 문제가 덜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년기 일자리를 선택하는 데서도 남녀 차이가 엿보인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60~74세 노인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한국어르신의 일과 삶 패널조사’(2024년)를 보면,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음’을 꼽은 응답자 비율은 남성(21.1%)이 여성(12.5%)보다 높았다.

천재영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박사는 “일부 남성 노인은 과거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원하는 일자리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며 “반면 여성은 적은 소득이라도 일을 이어가는 경우가 있어 이런 차이도 (무료급식소 성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로 나온 할머니, 밥 차리기 어려운 할아버지

이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인 여성들은 이문동과 청량리, 양천구 등 서울 곳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로까지 찾아왔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온 최모(80) 씨는 혼자 산 지 10년째라고 했다. 평일이면 거의 매일 오전 8시께 집을 나와 종로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 6시께 돌아간다. 최씨는 동네 경로당보다 종로가 편하다고 했다. 경로당에서는 돌아가며 식사를 준비하고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지만 무료 급식소는 “몸만 와서 받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양천구에서 온 김모(72) 씨는 40년 가까이 식당에서 일하다 그만둔 뒤 혼자 살고 있다. 연금과 공적 지원 등을 합쳐 월 75만원가량으로 생활한다. 거주지 인근 복지관 급식을 신청했지만 정원이 차 1년째 기다리고 있다. 이날도 하늘궁 도시락을 받은 뒤 원각사에서 점심을 먹었다. 도시락은 저녁으로 먹을 생각이었다. 김씨는 “경로당에 가면 괜히 눈치가 보이고 모르는 사람과 말 섞는 것도 싫다”고 했다.

27일 오전 11시께 탑골공원 인근에서 ‘하늘궁 도시락’을 받기 위해 어르신들 약 300명이 줄을 서고 있다. 김도윤 기자
27일 오전 11시께 탑골공원 인근에서 ‘하늘궁 도시락’을 받기 위해 어르신들 약 300명이 줄을 서고 있다. 김도윤 기자

동네 복지시설 대신 일부러 종로를 찾는 노인도 있었다. 한 남성 노인은 집 근처 복지관을 두고도 “아는 사람 얼굴을 볼까 봐 민망해서” 가지 않는다고 했다. 종로에서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적어 부담이 덜하다는 것이다.

천재영 박사는 무료 급식소의 성비 차이를 빈곤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천 박사는 고령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것에 대해 “여성 노인도 식비 부담이 큰 만큼 식사 준비 경험이나 사회관계, 주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의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현상으로 보인다”고 정리했다.

가난한 노년, 더 궁핍한 여성 노인들 [고령여성의 빈곤청구서]

가난한 노년, 더 궁핍한 여성 노인들 [고령여성의 빈곤청구서]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낙원상가로 이어지는 골목. 저녁 내 야장(야외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손님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하면 1954년생 나정혜 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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