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슈퍼마켓의 냉장·냉동고 해킹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외부의 조작으로 냉장·냉동고의 온도가 섭씨 50도까지 올라가면서 진열대에 있던 식품들을 대규모로 폐기하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자산을 탈취하는 것이 아닌 냉장고를 해킹하는 일에 대해, 식품 안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줘 심리적 타격을 주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배후에 대해서는 러시아나 중국과 연계된 해킹 조직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아직 수사망을 제대로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프랑스에 이어 2일(현지시간) 벨기에와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곳곳에서 수백곳의 식료품 매장이 냉장·냉동고 해킹을 당했다. 외신을 종합하면 벨기에의 까르푸와 이케아, 스웨덴의 쿱과 ICA, 룩셈부르크의 델헤이즈, 핀란드의 케스코, 아일랜드의 슈퍼밸류, 에스토니아의 식료품점 등이 해킹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영하로 유지됐어야 할 냉동고나 영상 2도 수준이 적정인 냉장고가 50도까지 온도가 올라간 것이다.
아직 조사 결과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8월 미국에서도 냉장고 해킹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당시 군사기지 6곳의 매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냉장고 오작동이 발생해, 미 국방부가 관련 의혹을 조사중이다.
슈퍼마켓 수백곳을 ‘무력화 한’ 해킹에 대해 유럽연합(EU)은 “우리의 식품 공급망을 교란하고, 이에 대한 소비자의 식품 공급망을 훼손하려는 시도”라며 맹비난했다. 그러나 아직 누구의 소행인지 실마리를 전혀 잡지 못했다.
사이버보안 기업 소포스의 리스크 인텔리전스 담당 수석이사 레이프 필링은 “가장 개연성 있는 두 가지 배후 시나리오는 ▷국가 차원에서 일종의 신호를 보내고 능력을 과시하는 경우, 혹는 ▷개인적인 이유로 이러한 공격을 수행하는 단독 해커일 경우”라고 분석했다. 그 중에서도 국가 연계 행위자일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금융 기관도 아닌 냉장고 해킹으로 노리는 것이 식품 안전이 훼손돼 대규모 식품 폐기가 벌어질 때 대중들이 받는 심리적 충격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에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러시아와 중국과 연계된 해커들이 용의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러시아는 유럽에서 다양한 사보타주(태업, 겉으로는 평시 활동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방법)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 이번 공격 배후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상업용 냉장고의 경우 관리하는 소프트웨어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어, 해커가 코드를 악용해 해킹할 수 있다. 냉장고 등 가전제품은 데스크톱이나 스마트폰과 달리 수시로 업데이트를 하지 않기 때문에 취약점을 보완하는 패치가 설치되지 않았을 가능성 높다. 전문가들은 상업용 냉장고 외에도 최근에는 세탁기, 로봇청소기 등 가정용 전자제품도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경우 많아, 비슷한 수법의 해킹 위협에 노출된 기기들이 많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대비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시스템에 업데이트 패치를 적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이버보안 기업 비트디펜더의 사이버 운영 담당 이사 닉 잭슨은 “상업용 냉장고는 패치를 설치 하려면 해당 시간 동안 기계를 가동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유통 업체들이 업데이트를 더디게 했을 것”이라 하면서 “더 심각한 경우는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고 있거나, 업데이트 작업의 우선순위를 높지 않게 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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