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1만원 스카프에 인산인해…시장 거리까지 북적
SNS가 부른 젊은층…외국인 관광객도 꾸준히 늘어
소매 전환하고 백화점 팝업도, 상인들은 ‘생존 전략’
결제 등 시장 활성화 과제는 여전…“편의성 높여야”
[헤럴드경제=박연수 기자] “뒤통수가 뜨거워도 신경 쓰지 마. 누나들 사고 싶은 걸로 골라. 급하게 하지 마. 별것도 아니야. 작년 재고 파는 거야.”
지난 3일 오후 3시께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스카프 상점 ‘다다구리’. 60여명이 매장 앞에 5줄로 겹겹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가 닿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차례를 기다렸다. 연신 “밀지 마세요”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사람들은 매장 안쪽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10도 안팎의 쌀쌀한 가을 날씨에도 매장 앞은 열기로 후끈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스카프를 판매하는 다다구리의 인기는 점주의 입담에서 시작됐다. “돈 쓰지 마. 이거 집에 가면 더 별로야.” 구매를 말리는 듯한 농담이 웃음을 자아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스카프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으며 화제가 됐다. 가격은 6개에 1만원으로 구매 부담이 적다.
다다구리는 몰려드는 인파에도 별도의 영업시간을 안내하지 않고 있다. 이날도 오후 2시50분께 매장 문이 열리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스카프 아저씨는 팔을 크게 벌리며 줄을 안내했다. 대기줄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도 즉석에서 고용했다.
매장 앞을 채운 사람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5060대 여성이었다. 40대 점주를 향해 “오빠~ 잘생겼어요~”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구매 팁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가수 임영웅의 공연장이나 팬클럽 모임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스카프를 고르는 사람들 사이로 카메라도 바쁘게 움직였다. 셀카봉을 높이 들어 스카프 아저씨를 촬영하거나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사람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모(58) 씨는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고 궁금해서 찾아왔다”며 “시장에서 30분 이상 기다려 물건을 사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막상 와보니 구경할 것도 많고 스카프도 저렴해서 좋다”고 덧붙였다.
SNS 타고 뜬 ‘핫플’…젊은층 발길 이어져
스카프 아저씨로 화제가 된 남대문시장은 최근 새로운 트렌드 집결지로 떠올랐다. 웰니스 열풍에 목욕용품이 주목받고, 옥을 활용한 패션 아이템이 인기를 끄는 ‘옥코어’ 트렌드에 옥반지를 찾는 수요도 늘었다. 그릇과 꽃, 수영용품까지 다양한 품목이 인기를 끌면서 전통시장 방문을 꺼리던 젊은층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방문객들은 좁은 통로에서 서로를 피해 갈지(之)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의 손에는 종이컵에 담긴 호떡과 신문지로 포장한 꽃, 비닐봉투 등이 들려 있었다. 남양주에서 온 김지민(29) 씨는 “잡채호떡을 먹고 싶어 엄마에게 함께 오자고 했다”며 “유튜브에서 자주 보던 길거리 음식도 먹고, 다양한 물건을 구경할 수 있어 재미있다”고 말했다.
호떡 가게 앞에는 30분가량 대기 줄이 이어졌다. 갈치골목에도 손님들이 몰렸다. 17년째 갈치골목에서 장사하는 한 상인은 “요즘 시장이 핫해지면서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코로나19 이후 크게 줄었던 매출도 많이 회복됐다”고 했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올해 8월 7일부터 11월 3일까지 ‘남대문시장’ 검색 관심도는 전년 동기 대비 300% 증가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남대문시장’ 해시태그 게시물이 14만5000개를 넘어섰다. 화사와 박명수 등 연예인들이 남대문시장을 콘텐츠로 다루면서 관심을 더했다.
남대문시장 내 관광안내소 이용객도 늘었다. 서울시관광협회에 따르면 고정식·이동식 안내소 이용객 수는 1월 3만1644명에서 10월 8만6840명으로 약 2.7배 늘었다. 9월(6만1739명)과 비교하면 40.6% 증가한 숫자다.
남대문시장에서 뜬 상품들의 공통점은 ‘가성비’다. 수저 세트는 9000원, 그릇은 1만원에 살 수 있다. 장미 100송이 한 다발은 2만5000원, 옥반지는 3000원이다. 먹거리도 저렴하다. 호떡은 2500원, 커피는 2000원, 미숫가루는 3000원이다.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를 생각하면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셈이다.
다양한 상품을 직접 구경하고 고르는 것도 재미다. SNS에서 본 상품을 실제로 찾아보고, 시장 골목을 누비며 먹거리를 즐기는 등 남대문시장이 젊은 층의 새로운 놀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상인들의 달라진 판매 방식도 활기를 더한다. 과거 도매 중심으로 운영하던 점포들은 이제 일반 소비자를 겨냥해 소매 판매로 전환했다. 세트 단위로 판매하던 상품을 낱개로 내놓는 식이다. 줄어드는 도매 수요를 보완하고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자구책이다.
박그릇을 운영하는 박병수(68) 씨는 업소용 제품과 혼수용 세트 위주였던 판매 방식을 1년 반 전부터 낱개 판매로 바꿨다. 그는 “예전에는 도매와 혼수용 세트를 주로 팔았는데 IMF와 코로나로 손님이 줄었다. 다이소와 온라인 쇼핑이 확산하며 기존 방식만 고수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일반 소비자들도 살 수 있게 낱개로 판매 기준을 바꿨더니 올해만 매출이 30~40% 늘었다”고 말했다.
남대문시장이 만든 유행은 백화점 팝업스토어로도 이어졌다. 6월 22일부터 7월 5일까지 잠실 롯데월드몰 지하 1층에서는 ‘현대기물&박그릇’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남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가게가 꾸린 행사다. 구매 고객은 2만명, 매출은 목표 대비 210%를 달성했다. 구매 고객의 60%가 2030대였다.
꽃 시장도 마찬가지다. 새벽 도매 중심으로 판매하던 상인들이 줄어든 도매 수요에 대응해 소매 판매를 늘렸다. 새벽 도매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꽃을 오후 3시까지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도매 수요 감소로 남는 꽃을 소매 판매로 소진하며 새로운 판로를 확보한 것이다.
남대문시장의 기존 경쟁력인 저렴한 의류를 찾는 수요도 여전하다. 겨울철을 앞두고 기모 바지와 김장 조끼, 골덴 바지 등을 각각 5000원에 판매하는 상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아동복 시장에도 꾸준히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6살 딸과 함께 오산에서 온 박모(39) 씨는 “주변 엄마들 사이 남대문 아동복 시장이 저렴하다는 이야기가 돌아 와봤다”며 “아이 옷과 신발을 절반 수준으로 저렴하게 구매했다”고 전했다. 80대 이모 씨는 겨울 패딩을 5만원에 장만했다. 그는 “논현동에서 버스 한 번이면 올 수 있다”며 “옷을 저렴하게 살 수 있어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젊은층 넘어 외국인까지…달라진 손님들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남대문시장은 쇼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이불과 잠옷, 양말 등 생활용품부터 안경까지 다양한 상품을 찾는다. 특히 짧은 시간에 맞출 수 있는 안경점을 방문하는 이들이 많았다.
시장에서 이불과 잠옷 등을 구매한 스페인 관광객 루이사(25)는 “틱톡을 보고 남대문시장을 찾았다”며 “스페인에서는 이렇게 좋은 소재 제품을 이 가격에 사기 어렵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안경점을 운영하는 고현석 씨도 “최근 외국인 손님이 20~30% 늘었다”며 “미국과 싱가포르 등 다양한 국가에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날 안경점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12명이 안경을 고르고 있었다.
약국도 북적였다. 남대문시장의 터줏대감 ‘왕솔약국’에는 최근 화장품을 사려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계산대 전면에도 화장품을 진열했다. 한미약품의 프로캄 레드엑스크림은 1만원, 리쥬모어의 더마 크림은 3만5000원이다. 온라인 시세 대비 1000~2000원 저렴하게 판매했다.
전체 방한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와 맞물려 남대문시장에서도 외국인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10월 방한 외국인은 약 1894만명으로, 지난해 연간 관광객 수를 이미 넘어섰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연간 규모와 비교해도 8% 이상 많다.
서울시가 ‘2026년 1~9월 서울 관광·소비 동향’을 분석한 결과, 외국인 관광객의 카드 소비액은 8조8435억원으로 전년 동기(5조6071억원)보다 57.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통시장은 1533억원에서 2282억원으로 48.8% 늘었다. 그중 남대문시장 외국인 카드 소비액은 65.6% 늘었다.
또 인스타그램에서 일본 여행객을 겨냥한 ‘#南大門(남대문)’ 게시물은 24만6000개를 넘었다. 쇼핑 추천 아이템을 소개하는 게시글이 다수다. 이 태그가 달린 스카프 아저씨 영상도 조회수 280만회를 돌파했다.
편의점·백화점까지 훈풍…같이 웃었다
남대문시장 열풍은 인근 상권의 매출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편의점이 대표적이다. GS25 인근 9개 점포의 올해 7~10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했다. 특히 10월 매출 신장률은 17.2%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남대문시장 인근 세븐일레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 상품별로는 기념품류가 757% 늘어 가장 높은 신장률을 기록했다. 샐러드(366%), 핫팩·쿨토시 등 계절용품(318%), 디저트(278%), 문구류(198%), 호빵(171%) 등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스카프 아저씨가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은 10월 25~31일, CU에서도 매출이 늘었다. 특히 인근 점포의 떡 매출이 전월 동기 대비 94.6% 증가했다. 디저트와 화장품 매출도 각각 55.3%, 67.0% 늘었다.
외국인 소비도 눈에 띈다. CU 남대문시장 인근 점포의 외국인 매출은 10월 25~31일, 전월 동기 대비 32.6%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은 7~10월 외국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1% 늘었다. 상품별로는 디저트가 568% 증가해 가장 높은 신장률을 보였다. 소스류(400%), 목욕용품(349%), 라면(196%), 요거트(156%), 건강·이너뷰티(131%), 전통주(127%), 즉석식품(94%), 떡(86%) 등도 증가했다.
남대문시장을 포함한 중구 일대가 관광 상권이 되며, 롯데백화점·신세계백화점도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5% 신장했다. 외국인 매출도 141% 늘었다. 2분기에도 77%, 외국인 기준 394% 성장했다. 롯데백화점 1·2분기 외국인 매출도 각각 103%, 120% 신장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역들도 관광형 시장을 육성해 외국인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방문객이 재방문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콘텐츠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회성 유행 넘어 지속 가능한 시장으로
남대문시장이 세계적인 명소가 됐지만, 전통시장 활성화에는 여전히 숙제가 많다. 반짝 유행이 아닌 지속적인 소비로 연결되려면 쇼핑 환경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현금 결제 관행이다. 일부 점포는 여전히 카드 결제를 거부하거나 현금 결제를 유도한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까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내국인과 다른 가격을 제시하거나 가격을 부풀리는, 이른바 ‘바가지요금’ 문제도 전통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한 호떡집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의 달러 결제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달러로 결제할 경우 적용 환율과 원화 가격을 두고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현금 결제 방식에 불편을 호소하는 내국인도 적지 않았다.
전통시장의 카드 결제 기반은 확대되는 추세다. KB국민카드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전통시장 유효 가맹점은 12만8000개로, 2022년보다 약 4000개 늘었다. 하지만 해당 가맹점에서 카드 결제가 무조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점주들이 있어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더 많은 소비자가 시장을 찾게 하려면 외국인 관광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을 확대하고, 언어 장벽을 낮추는 등 쇼핑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며 “특히 일회성 방문을 넘어 한국의 명소로 오랫동안 유명세를 이어가려면 실제 외국인이 마주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