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미식 아우르는 K-미식벨트
가난한 시절 달래준 닭갈비의 역사
온몸으로 눌러 짜낸 정통 막국수 맛
버려지던 못난이 감자의 유쾌한 반전
[헤럴드경제(춘천)=김명상 기자] 소양강을 끼고 펼쳐진 아름다운 도시 춘천은 호수와 낭만, 기차 여행에 더해 미식으로 완성된다.
서울 한복판에도, 지방 소도시 시장에도 이젠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춘천 닭갈비와 막국수는 흔해 빠진 외식 메뉴가 됐지만, 묘하게도 사람들은 굳이 춘천을 찾아와 이 음식들을 다시 맛본다. 익숙한 맛을 향해 기어이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춘천이 가진 힘이다. 서민의 음식으로 출발한 닭갈비는 이제 정부 미식 사업의 중심에서 지역 관광을 잇는 상징이 됐다.
K-미식벨트와 2026 치킨로드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추진 중인 ‘K-미식벨트’ 사업은 식재료 산지와 전통 식문화, 지역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엮어 체류형 관광으로 잇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식진흥원은 오는 2032년까지 전국에 30개 미식벨트를 조성한다는 로드맵을 진행 중이다. 순창과 담양의 장(醬) 벨트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안동의 전통주, 금산의 인삼, 광주의 김치 벨트 등을 차례로 선보였다. 올해의 화두는 ‘치킨과 닭 요리’다.
일명 ‘K-치킨벨트’ 사업의 추진 배경은 치킨의 인기 때문이다. ‘2025년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에서 한국식 치킨은 ‘가장 선호하는 한식’(응답률 14%) 1위에 올랐다. 외국인들의 머릿속에서 한국은 ‘맛있는 치킨의 나라’로 각인된 것이다.
이에 농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은 올해 치킨벨트 사업을 치킨과 닭 요리 분야 두 갈래로 나눠 지자체 공모를 진행했다. 공모 결과, 춘천과 제주는 닭요리, 수원과 구미는 치킨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각 지자체는 특화된 치킨벨트 여행상품을 순차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가난했던 시절 빚어낸 닭갈비의 역사
그중 춘천의 닭갈비가 정부의 미식 상품으로 낙점된 배경에는 1960년대 초반 먹고 살기 어려웠던 우리네 역사가 있다. 당시 춘천과 홍천 일대에는 대규모 양계장이 들어서며 상대적으로 값싼 닭고기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을 위해 선술집에서 닭의 갈비뼈 부위를 포 떠 고추장 양념에 재운 뒤 연탄불 석쇠 위에 구워 낸 것이 춘천 닭갈비의 시초였다.
연탄불 위의 소박한 안주였던 닭갈비는 1970년대에 접어들며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춘천 중앙로를 중심으로 드럼통에 두꺼운 무쇠 철판을 얹어 굽는 방식이 등장했다. 여기에 춘천 근교 농가에서 흔히 재배하던 양배추와 고구마, 떡이 철판 위로 뛰어들었다. 고기양이 적어도 채소를 듬뿍 넣어 함께 볶아내면 여럿이 둘러앉아 배를 불릴 수 있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과 인근 전방 부대에서 휴가를 나온 군인들에게 철판 닭갈비는 더없이 고마운 음식이었다. 고기를 거의 다 먹었을 때 남은 양념에 밥과 참기름, 김 가루를 볶아 먹는 ‘철판 볶음밥’ 문화 역시 이때 정착했다. 푸짐한 나눔의 방식은 전국적인 대중화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화전일취’ 전통주, ‘발효 100일’의 미학
코레일관광개발과 춘천시는 이러한 서사를 엮어 ‘2026 춘천 K-치킨벨트’ 여행상품을 출시했다. 당일 여행 상품은 여행객의 취향에 맞춰 5개 코스로 세분화했으며, 1박 2일 체류형 상품 ‘춘천 하룻밤 한 상’도 있다. 춘천의 농산물과 음식, 술,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해 지역 미식과 풍경을 깊이 있게 체험하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일정 중 들르는 ‘지시울 양조장’은 ‘꽃 앞에서 함께 취한다‘는 풍류의 의미를 담은 ‘화전일취’를 빚는 곳이다. 전통주와 프리미엄 막걸리를 제조하는 지시울 양조장의 철학은 타협 없는 고집에 가깝다. 인공 감미료나 산미제를 배제하고 쌀, 누룩, 물만 고집한다. 스테인리스 발효조 대신 전통 옹기를 채택해 미세한 숨구멍을 통한 미생물 대류 현상을 유도하는 것도 눈에 띈다. 이곳의 술 한 병은 저온 옹기 발효 100일, 숙성 두 달을 거쳐야 완성된다.
여러 제품 중 사계절 식용 꽃 22종과 전통 증류주를 더해 빚은 ‘화전일취 18 백화’는 매우 향긋한 것이 특징이다. 달콤하면서도 알코올 도수가 있어 마시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취하는 술이다. 8도 탁주 ‘동정춘’은 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고 쌀의 고유 전분만으로 발효되기 때문에 설탕이나 꿀을 넣지 않았음에도 무척 달다. 제조가 까다로운 술로 가격이 병당 30만원대에 달하며 서울 특급호텔 한식당에도 납품된다.
유소영 지시울 양조장 대표는 “전통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시대와 생활에 맞춰 유연하게 진화해야 살아남는다”며 “편리함을 수용하되 본래의 깊이와 원형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계승”이라고 설명했다.
온몸으로 만드는 원조 막국수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은 막 뽑은 면으로 바로 만들어 먹는 국수라는 뜻을 가진 막국수의 진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관람객은 메밀가루 반죽부터 면 뽑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체험은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은 고운 가루에 찬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치대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죽이 완성되면 이제 국수를 뽑을 차례. 천장에 닿을 듯 높게 솟은 전통식 국수 누름틀의 구멍 속에 둥글게 빚은 반죽을 집어넣는다. “자, 다 같이 누르세요! 하나, 둘, 셋!” 강사의 지시에 맞춰 동행한 성인 몇 명이 매달리다시피 온몸으로 국수틀을 꾹 눌렀다. 틀은 팽팽하게 버티다 겨우 내려앉고, 눌린 반죽은 국숫발이 되어 툭툭 떨어져 내렸다.
갓 삶아 찬물에 헹궈낸 면을 입안 가득 밀어 넣자 툭툭 끊어지는 특유의 식감 뒤로 고소한 메밀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담백한 맛과 매콤한 양념장 맛의 조화가 아삭거리는 채소와 함께 혀를 자극한다. 설탕이나 식초를 넣지 않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다. 기름진 철판 닭갈비의 느끼함을 산뜻하고 매콤하게 덜어내는 막국수는 춘천 미식 문화를 완성하는 또 다른 주역이다.
풍년의 역설을 딛고 피어난 감자 맥주
춘천 도심 퇴계동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로 접어들면 35년 된 붉은 벽돌 교회가 낯선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십자가 첨탑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공간은 신도들의 찬송가 대신 맥주가 익어가는 향기로 가득 찬 ‘감자아일랜드’다.
이 독특한 펍의 탄생 뒤에는 가슴 아픈 ‘풍년의 역설’이 있다. 강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출신인 안홍준 공동대표가 감자 과잉 생산에 따른 농가의 피해를 목격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가격 급락으로 농가들은 운송비조차 건지지 못해 수확한 감자밭을 갈아엎었다.
단순한 수급 불균형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실태를 확인해 보니 강원도와 전국에서 생산되는 감자의 30%가량이 흠집이나 규격 미달을 이유로 출하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있었다. 이에 “버려지는 감자로 맥주를 빚어 농가의 시름을 덜자”며 뭉친 대학생들의 실험은 집요한 기술 개발로 이어졌고, 감자 맥주 개발로 이어졌다.
여기서 만드는 맥주는 감자 특유의 전분과 풍부한 식이섬유가 맥주의 질감을 매끄럽게 다듬어 목 넘김이 부드럽고 청량한 것이 특징이다. 감자 외에도 옥수수, 단팥 등 강원도 농산물을 활용한 맥주 라인업만 총 16종에 달한다. 안주로 식탁에 오른 ‘닭갈비 피자’와 ‘감자 치킨’ 역시 춘천의 정체성을 영리하게 재해석했다.
정갈한 음식과 전통주의 환대
춘천의 전통주 문화를 알리고 지역 농산물의 선순환을 고민하는 여성 주모협동조합에선 ‘한식 다이닝바 호수’를 운영한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의 70% 이상이 춘천 땅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이다.
식탁에 오르는 상차림은 시각적인 완성도부터 남다르다. 노란 호박을 얇게 저며 꽃잎처럼 빚어낸 ‘호박 두부 꽃만두’는 만두피 대신 쫀득한 라이스페이퍼를 두르고 고기 대신 볶은 두부와 채소로 속을 꽉 채웠다. 한입 베어 물면 고기만두 못지않은 찰기와 담백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간간하게 조려낸 오이선과 바삭한 제철 채소전이 잇달아 입맛을 돋운다. 화려한 기교 대신 땅의 정직함을 담아낸 정갈한 차림새는 춘천 미식의 또 다른 깊이를 증명한다. 식당은 100% 예약제로 운영되며, 최소 4~5일 전 예약은 필수다.
한편 ‘2026 춘천 K-치킨벨트’ 여행상품은 코레일관광개발 여행몰에서 구매할 수 있다. 당일형 상품은 밥상·면상·술상·놀상(가족)·놀상(연인·친구) 등 5가지로 구성되며 가격은 6만7000원부터다. 오는 10월 16일에는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 축제 일정에 맞춘 ITX-청춘 특별 열차도 운행된다.
1박 2일 체류형 상품인 ‘춘천 하룻밤 한 상’은 10월 23~24일과 10월 30~31일 등 총 2회 운영된다. 2인 1실 기준 1인 가격은 22만4000원부터다. 모든 상품은 선착순으로 판매하며 조기 마감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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