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사랑’으로 베네치아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종종 영화가 타인의 고통, 또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져와 영화를 위해 소비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영화에 담아야 하는지 저 스스로 질문했고, 관객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가능한 사랑’으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이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에서 열린 수상자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 감독은 “‘가능한 사랑’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10여년 전 한국에서 일어났던 대기업의 정리해고 사태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이를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충격이 있었고 저 자신도 많은 충격을 받았다”고 돌아봤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 집단해고 사태를 연상시키지만, 이 감독은 앞서 지난달 25일 한국에서 열린 ‘가능한 사랑’ 제작보고회에서 “특정 기업의 사건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 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한 바 있다.
이 감독은 10여년 전에 이미 한 차례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들려다 제작을 단념했던 배경을 소개했다.
그는 “과연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자격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며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다큐멘터리 감독(예지)이 그 사람들(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찍는 이야기와 함께 새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감독은 “저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어떻게 영화에 담을 수 있는지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어쩌면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고통을 치유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이날 받은 심사위원대상을 영화와 관객의 관계를 계속 고민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도 했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극장에 모이기 힘들어하고 영화를 통해 서로 나눴던 관계가 끊어지는 상황에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관객과 좀 더 깊이 만나고 싶고, 저의 질문과 관객의 생각이 만났으면 좋겠다”며 “이 상(심사위원대상)은 그런 것을 격려하는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시상식에 앞서 주연 배우 조여정에게 ‘좋은 꿈’을 샀다는 일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조여정이 좋은 꿈을 꿨다며 꿈을 팔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풍습이 있다”고 설명하며 “그 꿈이 이런 행운을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상식 이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별도 일문일답에서는 “황금사자가 아니어서 실망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상도 상이지만 베네치아에서 처음 만난 관객들의 표정과 감정이 오고 가는 느낌이 저에게 아주 큰 힘을 준다”는 소감을 밝혔다.
‘가능한 사랑’은 이날 베네치아영화제 경쟁 부문 시상식에서 2등 상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이 감독이 베네치아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이후 24년 만이다.
가능한 사랑’은 이 감독이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자 첫 넷플릭스 영화로 전도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출연했다.
부유한 남편(조인성 분)을 둔 다큐멘터리 감독(조여정)이 해고 노동자 부부(설경구, 전도연)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계급적 배경이 다른 이들이 서로의 삶과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가능한 사랑’은 오는 23일 국내 일부 극장에서 개봉해 관객들을 만나고, 넷플릭스에서는 11월 6일 공개된다.
cheo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