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중심 非중국 최첨단 반도체 기업들 결집
中보다 20년 앞선 High-NA 노광장비로 승부수
삼성, 10나노 미만 D램에 High-NA 첫 적용 전망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안녕하세요. 칩칩팹팹, 최근 3주 동안 중국의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와 낸드 기업인 양쯔메모리(YMTC)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뤘는데요. 오늘은 중국의 반도체 추격에 맞서는 ‘비(非)중국 반도체 전선’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 세계 최대 노광장비 기업인 네덜란드의 ASML과 미국 종합 반도체 기업 인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가 잇따라 차세대 노광장비인 하이(High) NA 극자외선(EUV)을 적용하겠다는 공동 발표를 내놨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을 중심으로 미국의 인텔,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가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과 표준을 함께 짜기 시작한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2028년 첨단 D램 양산에 High-NA EUV를 업계 최초로 적용하겠다고 밝혔고, TSMC는 2030년 첨단 공정 양산에 High-NA를 쓰겠다는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인텔은 양사보다 앞서 이미 High-NA EUV를 사용한 제품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ASML의 장비를 사용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ASML과 인텔, TSMC, 삼성전자는 High-NA EUV 도입을 위해 포토마스크도 함께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포토마스크는 웨이퍼 위에 미세한 회로를 그려 넣기 위한 일종의 ‘회로 도장판’입니다. 장비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제조 인프라와 표준까지 함께 만들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의 발표 시점이 흥미롭습니다.
불과 약 한 달 전 중국이 자체 개발한 액침형 DUV(심자외선) 노광장비를 양산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세계 반도체 업계가 술렁였습니다. 미국 등의 제재로 ASML의 EUV 장비를 확보하지 못한 중국이 한 세대 이전 기술인 DUV부터 국산화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당시 중국의 노광장비 자립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ASML 주가는 하루 만에 8% 넘게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화웨이가 노광장비 산업에 직접 투자하며 DUV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기술 추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ASML과 비중국 최첨단 반도체 기업들이 그보다 한발 앞선 기술에서 공동 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중국이 현재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액침형 DUV는 ASML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상용화한 기술입니다. 이후 노광 기술은 EUV를 거쳐 High-NA EUV 단계까지 진화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아직 기존 EUV라는 산도 넘지 못했는데 글로벌 선두 업체들은 그다음 산을 오르기 시작한 셈입니다.
중국이 기존 EUV 기술을 따라잡는 사이 비중국 최첨단 반도체 생태계는 High-NA라는 새로운 기술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中 DUV 추격하자…비(非)중국 반도체 전선 구축
각 사가 ASML과 발표한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제일 앞서 있는 건 인텔입니다. 인텔은 이미 18A(2나노) 공정으로 생산하는 일부 제품에 High-NA EUV를 적용, 지금까지 누적 100만장 이상의 웨이퍼를 투입했습니다.
이미 ASML과 3년 넘게 6인치에서 12인치급 대형 포토마스크 전환을 위한 산업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으며, 마스크 제조사·소재업체 등과 함께 관련 표준과 인프라도 구축하고 있습니다.
TSMC도 움직였습니다. TSMC는 High-NA EUV를 2030년부터 첨단 공정 대량생산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처음으로 구체화했습니다.
동시에 ASML과 반도체 업계의 포토마스크 규격을 현행 6인치에서 12인치급 대형 포토마스크로 전환하기 위한 산업 공동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습니다. 2031년까지 12인치 포토마스크 파일럿라인을 구축하고 2033년에는 이를 활용한 High-NA 노광 시스템이 첨단 공정 양산에 투입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구상입니다.
삼성전자도 여기에 합류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2028년까지 첨단 D램 제조에 High-NA EUV를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인텔과 TSMC처럼 ASML이 주도하는 대형 마스크 이니셔티브에도 참여해 현재 6인치인 포토마스크 규격을 12인치급으로 확대하기 위한 기술과 인프라, 표준 개발에 나섭니다.
‘High-NA EUV’ 효율 위해선 포토마스크 개발도 필요
차세대 반도체 제조 표준으로 ASML·삼성, 더 깊은 밀착
High-NA EUV 장비 못지않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바로 ‘12인치 대형 포토마스크’입니다.
반도체 업계는 수십년 동안 6인치 포토마스크를 표준으로 사용해왔습니다. 문제는 AI 반도체를 비롯한 최첨단 칩의 크기가 커지고 회로 구조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번의 노광 영역에 회로 전체를 담지 못하면 회로를 여러 부분으로 쪼개 찍은 뒤 웨이퍼 위에서 다시 이어붙여야 합니다. 이를 ‘다이 스티칭(Die Stitching)’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다이 스티칭’에서 경계가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오류가 발생하고, 재작업까지 필요하게 됩니다. 공정시간이 길어지고 제조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High-NA EUV에서는 이 부담이 더욱 커집니다. 기존 EUV보다 훨씬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는 대신 한 번에 노광할 수 있는 영역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기존 6인치 포토마스크를 그대로 사용한다면 회로를 더욱 잘게 나눠 찍어야합니다.
이때 마스크 자체를 12인치급으로 키우면 한 장에 더 많은 회로 정보를 담을 수 있습니다. 스티칭 횟수를 줄여 불량 가능성과 제조 원가를 낮추고 High-NA 장비의 생산성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겁니다. ASML은 대형 포토마스크 체계가 정착할 경우 High-NA 시스템의 생산성을 약 40%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금 쉽게 비유해 볼까요.
작은 ‘가나 초콜릿’ 한 조각마다 그림을 나눠 그린 뒤 다시 정확하게 이어붙이는 것보다, 큰 가나 초콜릿 판 하나에 그림 전체를 한 번에 그려놓고 필요한 크기로 나누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포토마스크의 크기만 두 배로 키운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사실상 반도체 제조 표준 전체를 바꾸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마스크를 만드는 장비부터 결함을 잡아내는 검사·계측 장비, 마스크를 옮기고 보관하는 시스템 등등을 모두 대형 포토마스크에 맞춰 새로 설계해야 합니다.
결국 High-NA EUV를 본격적인 양산에 활용하면서 생산성까지 끌어올리려면 대형 포토마스크를 비롯한 주변 생태계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ASML과 인텔, TSMC, 삼성전자의 협력이 단순한 ‘장비 구매 관계’를 넘어 차세대 반도체 제조 표준을 함께 만드는 작업으로 평가되는 이유입니다. 동시에 중국이 EUV 장비 자체를 따라잡는 동안 비중국 최첨단 반도체 진영은 High-NA와 대형 포토마스크라는 또 하나의 기술 장벽을 쌓아가는 모습입니다.
삼성, 2028년 첨단 D램에 High-NA EUV 도입
10나노 미만 0a급 D램 적용 가능성
이번 ASML의 연속 발표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메모리 3사 가운데 삼성전자만 ASML과 별도의 공식자료를 냈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와 ASML의 협력 관계는 오래됐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0년 3월 메모리 업계 최초로 D램 생산에 EUV 공정을 적용했습니다. 당시 EUV를 적용한 1세대 10나노급 D램 모듈 100만개 이상을 공급하며 EUV의 실제 D램 양산 적용 가능성을 검증한 바 있습니다.
High-NA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취하는 모습입니다. 새로운 노광 기술을 실제 D램 양산 제품에 조기에 적용해 차세대 미세공정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겁니다.
SK하이닉스 역시 High-NA 도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로이터에 “12인치 포토마스크 도입과 관련한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하고 있으며, 2028년 High-NA EUV 공정을 D램 양산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High-NA EUV 도입에 앞설 것이라는 평이 나옵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SML과 삼성전자는 한국에 공동 R&D센터를 만들기로 협약했고 미국 반도체 전공정 장비사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코리아(AMAT)도 오산에 6000평짜리 R&D 협업센터를 짓는 등 삼성전자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업계에 알려진 개발 로드맵을 감안하면 적용 대상은 10나노급 이후 차세대인 0a급 D램이 될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10나노급 7세대인 1d D램 개발 막바지에 들어갔으며, 이르면 2027년부터 초기 양산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후 10나노 미만 첫 세대인 0a D램의 본격적인 양산 시점은 2028년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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