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상용화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시간을 요구한다. 기술 개발이 끝나도 안전성 검증과 제도 정비를 거쳐야 하고, 기존 산업과의 이해관계도 조율해야 한다. 자율주행차와 드론 배송 같은 새로운 기술이 대표적이다. 기술 준비가 완료되더라도 결국에는 사회가 준비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반면 중국 선전은 순서가 다르다. 이곳에서는 이미 자율주행 택시가 도로를 달리고, 드론은 도심에서 물류를 나르며, 휴머노이드 로봇이 거리를 걸어 다닌다. 물론 모든 기술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있다. 그럼에도 시장은 멈추지 않는다. 기술은 연구실에서 완성된 뒤 시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사용되며 완성된다.

지난가을 2026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지가 선전으로 확정됐다. 많은 사람들은 국제회의가 열릴 도시 하나가 정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중국은 왜 수많은 도시 가운데 선전을 선택했을까? 답은 선전의 거리를 걸어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선전은 더 이상 제조업 도시만이 아니다. 화웨이와 텐센트, BYD, DJI가 성장한 이곳에서는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로봇, 저고도경제, 스마트 제조 같은 미래 산업이 가장 먼저 현실이 된다. 새로운 기술은 발표보다 실증이 빠르고, 실증보다 시장이 빠르다. 시민들은 새로운 기술의 첫 번째 사용자가 되고, 기업은 그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를 다시금 기술 혁신으로 연결한다.

도시가 제공하는 열린 실험 환경이 기업의 도전을 촉진하고, 그 성과가 다시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테스트베드가 된 셈이다.

이번 APEC에서 세계는 정상들의 회의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회의장 밖에서 움직이는 선전이라는 도시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일상이 된 거리, 드론이 오가는 하늘, 휴머노이드가 사람을 응대하는 매장. 중국은 그렇게 미래 산업을 설명하는 대신 눈앞에 펼쳐 보인다.

중국은 분명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술이 가장 먼저 현실에 던져지고 가장 빠르게 검증되는 시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기업들은 실패 가능성을 이유로 시도를 늦추지 않는다. 불완전함이 남아 있는 기술을 실제 환경에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찾아 빠른 속도로 개선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며 중국 시장에 대한 관점도 확장돼야 한다. 중국을 기술을 판매하는 시장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미래 기술의 실험장이자 글로벌 진출을 위한 검증 무대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선 새로운 기술을 중국 시장에 빠르게 선보이고, 소비자로부터 얻은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이후 검증이 완료되면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전형적인 공연의 순서는 수없이 연습한 뒤 막이 오르는 형태다. 하지만 선전에서는 공연의 순서가 거꾸로다. 무대의 막이 먼저 오르고 기술의 검증은 관객이 보는 앞에서 완성된다. 어쩌면 이번 2026 APEC을 통해 중국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정상회의 그 자체를 넘어, 자신들이 미래를 만드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선전에는 리허설이 없다.

윤보라 코트라 선전 무역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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