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 판단기준 살펴보니
美 ‘임의적 교섭사항’은 회사 거부 가능
日, 설비 투자는 경영자 고유 권한 명시
경영상 결정 경계 ‘가이드라인’ 담아야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따라 추진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반도체 공장 설립을 두고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신규 투자에 따른 인력 배치전환은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다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주요 국가들은 법률과 기존 법원 판례를 통해 단체교섭의 대상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 경계가 모호해 자칫 산업계의 노사 갈등만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31일 경제계에 따르면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의 대상을 규정하면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이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그 범위가 넓고 모호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어디까지 쟁의 대상에 포함이 되는지는 고용노동부의 해석지침을 통해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해석지침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신규 투자나 공장 신설과 같은 경영상 판단에 대해선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노사 간 분쟁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美·英, 단체교섭 대상 구체적 명시…소모적 갈등 최소화=해외 주요 국가들은 투자나 공장 신설·폐쇄, 사업 재편과 같은 경영상 결정 자체에 대해 파업으로 다툴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이와 같은 경영상 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해고, 자리 이동, 보상 문제는 노사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신규 공장을 지을 지 여부는 회사의 결정에 맡기되 이후 발생하는 근로자 보호 문제는 노사가 마주 앉아 후속 협상으로 해결하도록 한 셈이다.
미국의 경우 임금, 근로시간, 기타 근로조건을 노동법(전국노동관계법)상 ‘의무적 교섭사항’으로 규정해 노조의 교섭 요구를 회사가 거부할 수 없도록 했다.
반면, 신사업 진출 여부나 신규 공장 구축, 적자사업 철수 같은 경영 판단은 ‘임의적 교섭사항’으로 분류했다. 노조 측에서 교섭을 제의하더라도 회사가 거부할 수 있다. 노사 협상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파업을 강행할 수도 없다.
영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에 ‘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쟁의’ 목록을 만들어 놓았다. 임금 등 고용조건과 채용과 해고, 업무 배분, 징계 같은 주제들이 이에 해당한다.
노조의 파업권은 이 주제와 관련 있는 사안으로 분쟁을 겪었을 때에 보호받는다. 가령 ‘사업부 매각 반대’, ‘공장 폐쇄 철회’처럼 경영 판단 자체를 겨냥한 파업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일본 역시 판례를 통해 생산 계획, 설비 투자, 사업장 이전 결정은 ‘경영전권 사항’(경영자의 고유 권한)으로 보고 의무적 교섭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공장 폐쇄 철회’를 주장하며 강행한 파업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독일은 사업장 폐쇄 같은 중대한 결정을 하면 노조와 별도로 조직된 노동평의회에 미리 정보를 제공하고 협의해야 한다. 직원들의 경제적 타격을 줄이기 위해 퇴직금 지급·재교육 지원 등을 담은 ‘사회적 계획’이라는 보상 패키지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대신 해당 경영상 결정 자체를 저지하기 위한 파업은 허용되지 않는다.
▶“노동부 해석지침에 분명한 가이드라인 담아야”=우리나라도 해외 주요 국가의 사례를 참고해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경영상 결정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조법 재개정이나 대법원 판례 확립에는 또 다시 긴 시간이 걸리는 만큼 우선 노동부가 해석지침에 ‘신규투자 등 경영 판단 사항은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정리해고·구조조정 등 근로자의 지위와 근로조건에 중대한 변동을 수반하는 인력 배치전환과 투자·증설에 따른 통상적 인력 재배치를 구별하는 판단 기준을 지침에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판단 기준이 분명해지면 신규 투자와 사업 확장을 위한 통상적 경영활동까지 노동쟁의 대상으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사 양측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소모적인 분쟁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국가들은 근로자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투자 결정이 근로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협상과 협의의 대상으로 삼아 보호하고 있는 것”이라며 “사업상 결정은 경영의 영역에 맡기고 그에 따른 영향은 협상의 영역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일 기자
joz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