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겨울나무라는 것을. 내가 지나왔던 봄도 지금처럼 총천연색이었지요. 앞다투어 피어난 꽃은 저마다의 빛깔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고, 햇빛 받은 반짝임을 스스로 빛나는 것이라 착각했었죠.
하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내가 빛나지 않는데 햇빛만으로 밝아질 수는 없겠죠. 나와 태양이 만나 빛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갓 돋은 새싹이 아름다운 것은 자라날 가능성 때문이었을 겁니다. 보드라움이 자라나서 하늘을 봅니다.
내가 겨울나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돌아보니 나는 여름 나무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푸르름이 참으로 눈부셨습니다. 신록(新綠)에서 녹음(綠陰)으로 그리고 울창함으로 자라났습니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은 숲이 되었고, 때로는 빛을 피하고, 때로는 시원한 그늘이 되었습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았고, 저 건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볼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숲을 헤치고 나가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하늘이 보이지 않는데도, 하늘이 그립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볼 게 많았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봐야 할 게 많았다는 말이 정확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가을 나무이기도 했습니다. 봄이 꽃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잎의 계절입니다. 꽃이 빛을 담았다면, 잎은 빛을 내어 보입니다. 뜨거웠기에 더 붉고, 힘들었기에 더 노란 모습으로 길가에 섰습니다. 예뻐 보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가을 나무를 애틋해합니다. 아마도 곧 떨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겠죠. 단풍의 빛깔은 낙엽의 허무함으로 더 빛이 납니다. 낙엽의 강하(降下)는 시간의 흐름을 멎게 합니다.
때로는 무중력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공상태의 수직 낙하를 꿈꾸던 저는 처절한 가을 나무였습니다. 낙엽이 파격이 됩니다. 모두 나를 떠나갑니다. 혼자임을 느끼고, 다시 내 뿌리를 마주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흘러 다시 겨울이 옵니다. 마치 내게 겨울이 처음이었다는 듯 새롭습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봄도, 여름도, 가을도 함께합니다. 모든 계절마다 겨울을 만들어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겨울을 몰랐습니다. 아니 내가 겨울이 되기까지 겨울나무를 몰랐다고 해야겠습니다. 봄이 나인 줄 알았고, 여름이 나인 줄 알았습니다. 가을에는 좀 쓸쓸해하였고요. 그래도 내게 겨울이 올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겨울이 되고 보니 두렵습니다. 마음도 몸도 춥습니다.
나는 이제 겨울나무입니다. 가지 사이로 바람이 붑니다. 나뭇잎 사이로 따스한 햇빛이 스며듭니다. 그리하여 나는 여전히 봄나무이고, 여름 나무고, 가을 나무입니다. 나는 새싹이고, 푸른 잎이고, 단풍이고, 낙엽이고, 헐벗은 가지입니다. 그런 시절을 품고 나는 지금 겨울나무입니다. 나는 기쁨이고, 슬픔이고, 즐거움이고, 외로움이고, 화려함이고, 처절함입니다. 그래서 나는 저만치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겨울나무입니다.
내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하며, 내 모습에는 아버지, 어머니와 아이들의 모습이 함께합니다. 나는 오늘 비로소 나무입니다. 다 떨어뜨리고 다 받아들이고,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어제도 보고, 내일도 보는 겨울나무입니다. 물론 지금은 봄이라는 계절이지만 말입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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