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에 북한이 남쪽으로부터 날아온 무인기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전개된 상황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 사건을 남북관계가 개선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악화의 길로 접어들 계기가 될 교차점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지난해 말 통일부는 2026년을 ‘평화 공존 원년’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이러한 구상은 중대한 시험대 위에 올라선 셈이다. 여기서 남북한 평화 공존이란 전쟁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평화체제를 만들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늘날 남북관계 개선의 목표를 ‘차가운 평화’ 수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여기서 ‘차가운 평화’란 서로를 상대로 군사적 계획을 발전시키는 적대적 경쟁 관계이지만, 상호 억제력 때문에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라는 의미다.
그러나 남북한 평화체제란 차가운 평화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학술적으로는 ‘안정적 평화체제’를 뜻한다. 안정적 평화체제란 갈등 해결 수단으로 군사력 사용이나 위협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는 관계를 의미한다. 유럽 역사에서 최대 적대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오늘날까지 긴 협력 과정을 거치며, 이제 전쟁을 상상할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 대표 사례이다.
남북한이 이러한 수준의 안정적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핵문제다. 북한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선결 조건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평화체제로 가는 과정에서 단계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어떤 관점이든 결국 비핵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남북한 사이의 안정적 평화체제 구축은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 1978년 비핵 국가였던 이집트는 핵무장 국가 이스라엘과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했고, 이후 40년 넘게 안정적 평화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평화협정의 조건으로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핵무장 국가와 비핵 국가가 비핵화 논의 없이도 평화체제를 진전시킨 보기 드문 사례다.
이 경험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평화체제는 비핵화와 반드시 선후관계로 묶여 있어야만 가능한 것일까. 만약 남북한이 이집트와 이스라엘 관계에 버금가는 수준의 안정적 평화체제를 먼저 구축할 수 있다면, 그렇게 제도화된 평화가 오히려 비핵화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현실적 토대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물론 이 사례가 성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중재와 보증이라는 결정적 요인이 있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집트·이스라엘 모델을 한반도에 적용하려 한다면, 당시 핵심적 역할을 했던 미국의 존재가 오늘날에서도 필수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2026년 새해 한반도는 남북관계가 평화의 길로 갈 것인지, 다시 악화의 길로 접어들 것인지가 결정될 갈림길에 서 있다. 이제 비핵화 문제에 가로막혀 평화체제 논의 자체를 멈출 것인지, 아니면 평화를 먼저 만들고 그 토대 위에서 비핵화를 모색할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 전 공군대학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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