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만에 유리천장 깬 여성”…펠로시, 37년 의정활동 은퇴

두번의 하원의장·두번의 트럼프 탄핵…美역사 바꾼 여성 정치거물

화려한 업적 뒤 남은 막대한 부·투자 논란…유산 남기고 은퇴 선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2007년 미국 하원의장으로 선출된 후 연단에 올라 열설하고 있다.  [로이터]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지난 2007년 미국 하원의장으로 선출된 후 연단에 올라 열설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오늘은 미 의회에 있어 역사적인 날입니다. 또한 미국 여성들에게도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우리는 200년 동안 이 날을 기다려왔습니다.”

2007년 1월, 낸시 펠로시 의원이 워싱턴DC 하원 본회의장에서 하원의장으로 선출된 직후 외친 말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오늘, 우리의 딸들과 손녀들을 위해 우리는 대리석 천장을 깨뜨렸다.”

미국 민주당의 상징이자, ‘페미닌 파워’의 아이콘으로 불린 낸시 펠로시(85)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내년 초 임기를 끝으로 물러나겠다는 공식 발표였다. 두 차례 하원의장을 지내며 워싱턴 정치의 막전막후를 움직인 거물의 퇴장이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고(故) 다이앤 파인스타인과 함께 ‘여성 권력 3인방’으로 불렸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난 유일한 딸

낸시 펠로시 미국 전 하원의장 [AP]
낸시 펠로시 미국 전 하원의장 [AP]

펠로시는 1987년부터 캘리포니아 제11선거구를 대표하며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활동해왔다.

2007년 제52대 미 하원의장에 오르며 미국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2007~2011년, 그리고 2019~2023년 두 차례 의장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 6일 소셜미디어(SNS) 영상 메시지에서 “내년 1월부로 의회를 떠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고향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헌정한 영상에서 펠로시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의 신뢰와 자유 덕분에 저는 대리석 천장을 깼고, 여성 최초의 하원의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샌프란시스코 시민 여러분, 저는 재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가장 먼저 여러분께 알립니다.” 이어 “감사한 마음으로, 자랑스러운 대표로서 마지막 1년을 봉사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고 끝맺었다.

민주당 핵심 인물로 성장…40년 정치 여정

현대 민주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펠로시는 2019년 다시 하원의장에 선출돼 2023년까지 재임했다. 당 지도부에서 물러난 뒤에도 ‘명예 하원의장(Speaker Emerita)’ 칭호를 유지하고 있다.

1940년 3월 26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난 펠로시는 6남매 중 막내이자 유일한 딸이었다.

부친 토머스 다알레산드로 주니어는 12년간 볼티모어 시장과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고, 형 토머스 다알레산드로 3세 역시 시장을 역임했다.

1960년대 워싱턴DC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시절 투자가 폴 펠로시를 만나 1963년 결혼했다.

그는 1969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뒤, 다섯 자녀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지냈다. 정계 입문은 1987년, 47세의 늦깎이 나이였다.

캘리포니아 민주당 전국위원회에서 기금 모금 활동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한 그는 1981~1983년 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장, 1984년 민주당 전당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원이 지난 200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내대표에 출마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원이 지난 200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내대표에 출마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2001년에는 민주당 최초 여성 원내총무, 2002년에는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그리고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며, 이듬해 하원의장으로 선출됐다.

2010년 ‘오바마케어(ACA)’의 통과를 주도하며 개혁 입법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해당 법안 통과 이후 민주당은 4번 연속 선거에서 패배했고, 펠로시는 8년간 소수당 원내대표로 남았다. 그 과정에서 동료 의원들의 불만이 높아졌고, 일부는 새로운 세대의 리더십을 요구했다.

2018년 여름이 되자 펠로시는 대부분의 선거 유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젊은 민주당 후보들은 펠로시와의 거리두기를 선언하며 “그녀가 다시 의장이 되는 것을 막겠다”고 공언할 정도였다.

하지만 펠로시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기기만 해, 베이비(Just win, baby)”라는 오클랜드 레이더스 구단주 앨 데이비스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며 젊은 세대의 정치인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던지기도 했다.

정치적 암흑기를 헤매던 펠로시에게 뜻밖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 빛의 정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영원한 적수이자 정치 인생 제2막의 불씨가 된 인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펠로시의 ‘정치 동력’ 되다…정치인생 2막 부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펠로시의 내년 11월 하원선거 불출마 선언에 대한 질문에 “나는 그가 형편없는 일을 했고 나라에 막대한 피해와 명성의 손실을 안겨준 사악한 여자(evil woman)라고 생각한다”며 “기쁘다”고 말했다.

펠로시 역시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구상에서 최악의 존재(worst thing on the face of the Earth)”라고 지칭한 바 있다. 2018년 중간선거 때에는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탈환했을 당시 트럼프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펠로시는 “그는 그럴 가치도 없다”고 일축해 주목받기도 했다. 펠로시는 트럼프를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두 번이나 가결했다.

트럼프와 펠로시 간 ‘악연’은 미 정치권에서 유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취임 당시 임기 내내 펠로시를 “미친 낸시(Crazy Nancy)”라 부르며 공격했는데, 이 공격이 오히려 펠로시에게 정치 인생 제2막을 열어준 셈이 됐다.

트럼프의 존재는 민주당을 결집시킬 구심점이 됐고, 펠로시에게는 전국적인 주목과 명분을 안겨줬다.

2019년 시리아 정책 논의 중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펠로시가 트럼프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진 이 공개됐다. 이 이미지는 SNS에서 순식간에 ‘펠로시의 저항’의 상징으로 확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0년 국정연설 시작 전 낸시 펠로시의 악수를 거부하자, 펠로시는 트럼프의 연설 직후 바로 뒤에서 연설문을 찢고 있다. [유튜브 @Global News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0년 국정연설 시작 전 낸시 펠로시의 악수를 거부하자, 펠로시는 트럼프의 연설 직후 바로 뒤에서 연설문을 찢고 있다. [유튜브 @Global News 갈무리]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국정연설 시작 전 펠로시의 악수를 거부하자, 펠로시는 트럼프의 연설 직후 바로 뒤에서 연설문을 찢어버렸다. 이 장면들은 모두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밈’으로 소비되며 펠로시의 ‘정치적 동력’을 불어넣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워싱턴DC의 미국 의회의사당에서 연설이 끝나자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트럼프 쪽으로 두 팔을 쭉 뻗어 ‘물개 박수’를 치고 있다. [@CNN 영상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워싱턴DC의 미국 의회의사당에서 연설이 끝나자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트럼프 쪽으로 두 팔을 쭉 뻗어 ‘물개 박수’를 치고 있다. [@CNN 영상 갈무리]

한 해 전에는 트럼프에게 보낸 펠로시의 ‘물개 박수’가 화제였다. 트럼프가 80분 연설 말미에 “우리는 복수, 저항, 보복의 정치를 거부해야 하며 무한한 협력, 타협, 공동선의 가능성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자 펠로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트럼프 쪽으로 두 팔을 쭉 뻗어 박수를 친 것이다.

마치 물개가 앞발을 파닥거리는 듯한 모습의 박수에는 조롱과 경멸의 의미가 담겼는데, 펠로시의 딸 크리스틴은 “이날 밤 엄마의 표정은 내가 10대 떄 ‘너도 네가 잘못한 걸 알지’라며 짓던 표정이었다”고 회고했다.

바이든 임기 땐 ‘조율의 달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지난 202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을 보고 있다. [로이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지난 202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을 보고 있다. [로이터]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펠로시가 이끄는 민주당은 간신히 과반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주요 법안은 줄줄이 통과됐다. 그 배경에는 펠로시의 정밀한 정세 판단력이 있었다. 람 에마누엘(민주당) 주일 미국대사는 “그녀는 단지 아이디어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거에서 이겨야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는 현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펠로시의 측근들은 트럼프와의 격돌이 그녀를 더 강한 리더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펠로시의 ‘쇼맨십’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정치 감각’으로 필요한 표를 정확히 계산해내는 능력은 여전했다.

벤 레이 루한 민주당 상원의원은 “그녀는 항상 남들보다 네 걸음 앞서 있었다. 트럼프조차 그녀를 두려워했다”며 “트럼프가 그녀를 향해 내뱉은 혐오 발언조차, 사실상 그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7년 워싱턴DC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7년 워싱턴DC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로이터]

하지만 트럼프는 끝까지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사악하고 끔찍한 사람”이라며 마지막까지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트럼프는 펠로시를 향해 “악취가 사라져 기쁘다!”는 글을 자신의 SNS인 트루스소셜에 남겼다.

‘주식의 여왕’ 꼬리표에…묘한 불출마 타이밍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지난 2023년 1월 워싱턴DC의 미국 의회의사당에서 의장직을 맡고 있다. [AFP]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지난 2023년 1월 워싱턴DC의 미국 의회의사당에서 의장직을 맡고 있다. [AFP]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상류층 주부로 살다 정계에 투신해 40년 가까이 현역으로 활동한 그는 ‘서민의 대변자’, ‘깨끗한 정치인’을 자처했지만, 정치권에 있는 동안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편법 투자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비윤리적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펠로시의 불출마 소식이 전해진 이후 그가 의원으로 재임한 37년간 남편과 함께 주식으로 1억3000만달러(1888억원) 넘는 수익을 올렸다는 보도는 논란을 키웠다. 이를 수익률로 환산하면 무려 16930%에 달했는데, 같은 기간 다우존스 평균 수익률은 2300%에 불과했다고 현지매체는 전했다.

이에 따라 ‘펠로시 포트폴리오’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펠로시가 투자하는 종목을 따라 투자처를 정하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남편 이름으로 거래하는 펠로시 부부의 포트폴리오는 엔비디아, 알파벳, 애플 등 기술주에 집중됐는데, 지난해에도 수익률이 50%를 돌파해 대형 헤지펀드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런 논란 속에 2012년 의정활동에서 얻은 정보를 주식 거래에 활용하지 못하게 한 법안(STOCK Act)이 통과됐지만 개별 거래 금지는빠진 ‘반쪽짜리 법안’이었다. 결국 2020년대 들어 펠로시를 겨냥해 규제를 강화한 법안들이 여러 차례 발의됐다. 심지어 법안 별칭을 ‘펠로시법’으로 할 정도였다. 이 법에는 의원들의 개별 주식 거래를 금지하고 백지신탁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일각에서는 “법안 시행을 앞두고 펠로시가 타이밍 좋게 은퇴를 결정했다”는 시선도 있다. 법이 통과되면 펠로시 부부는 지금처럼 자유로운 거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딸 크리스틴 펠로시, 캘리포니아 선거 하원의원 출마 선언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의 딸 크리스틴 펠로시 [게티이미지]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의 딸 크리스틴 펠로시 [게티이미지]

낸시 펠로시는 은퇴하지만 그 이후는 딸 크리스틴 펠로시가 이어받았다. 다만 크리스틴 펠로시는 모친의 지역구인 11선거구(샌프란시스코)에 출마하지 않고, 캘리포니아 주상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지난 10일(현지시간) 밝혔다. ‘세습’ 논란에 대해 확실한 선을 그은 셈이다.

크리스틴은 이날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어머니 지역구 계승이 아닌) 내가 생각한 길이 있다”며 이 선거구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크리스틴은 민주당의 베테랑 조직가이자 변호사로 오랫동안 어머니의 후계자로 거론돼 왔다. 그는 이날 SNS에 게시한 영상에서 주상원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자신의 도전을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맞선 민주당의 저항 정신 계승으로 표현했다.

만약 크리스틴이 어머니의 뒤를 이어 샌프란시스코 연방 하원 선거에 출마했다면,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 뛰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펠로시의 뒤를 이어 출마를 공식화했거나 출마가 예상되는 인물로는 스콧 위너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 사이캇 차크라바르티 전 기술기업 임원 겸 진보 진영 인사 등이 있다.

낸시 펠로시 걸어온 길
낸시 펠로시 걸어온 길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 정세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헤럴드경제 국제부가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mokiy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