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원에서 40년 만에 일본제철 사장으로

“계획은 일류, 실행은 삼류, 변명은 초일류” 작심비판

취임 3년 만에 역대 ‘최대손실→최대이익’ 대반전

美시장 절실했던 일본제철 “US스틸 인수” 도전

거듭된 좌초에도 “트럼프, 괴짜아닌 흥정의 달인” 숫자·논리로 설득

실천 통해서만 정신 단련된다는 ‘사상마련(事上磨錬)’ 좌우명

집요함·승부욕·끈기 ‘히토요시의 조조’, 글로벌 철강업계 재편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이 지난 6월 일본제철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이 지난 6월 일본제철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평사원으로 입사해 40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오른 남자. 역대 최대 손실을 냈던 일본제철을 단 2년 만에 역대 최대 이익 기업으로 바꾼 남자. “계획은 일류, 실행은 삼류, 변명은 초일류”라며 회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대대적 개혁을 밀어붙인 주인공. 바로 일본제철 하시모토 에이지(69) 회장이다.

2023년 12월, 하시모토 회장은 예상밖 전격 선언으로 업계를 깜짝 놀래켰다. “US스틸을 2조1000억엔(약 20조원)에 인수하겠다”는 발언이었다. 일본 철강업계는 술렁였고, 세계 시장도 긴장했다. 하지만 곧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미국 정치권과 노동조합은 한 목소리로 반대했고, 지난 1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인수 불허” 결정을 내리면서 인수는 사실상 무산되는 듯 보였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4월, 인수 불허 결정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일본제철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재심사”를 요청했을 때, 업계 대부분은 “무모한 도전”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5개월 후, 믿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승인한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반전. 하시모토는 어떻게 트럼프를 넘어설 수 있었을까.

“트럼프는 ‘괴짜’ 아닌 ‘유연한 협상가’”…숫자와 논리로 협상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일본제철과 US스틸의 파트너십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해 근로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일본제철과 US스틸의 파트너십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해 근로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AFP]

하시모토는 트럼프를 다르게 봤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로 평가했지만, 그는 트럼프를 “유연한 협상가”로 평가했다. 특히 “바이든의 결정을 뒤집는 것을 즐긴다”는 트럼프의 성향을 간파하며 승산을 읽었다.

하시모토는 “트럼프를 단순히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그는 흥정의 달인이다”라고 말했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협상은 시작된다는 그의 원칙이 빛난 순간이었다.

두 번째 비결은 트럼프의 ‘본심’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트럼프는 “US스틸은 반드시 미국 기업이어야 한다”고 고집했고, 일본제철은 “100% 완전 자회사화”를 원했다.

양립할 수 없어 보였던 이 요구들에 하시모토는 ‘황금주(1주)’라는 묘안을 꺼냈다. 미국 정부에 거부권을 가진 주식 한 주를 부여해, 국가가 최종 통제권을 갖도록 한 것이다. 대신 경영 실무권은 일본제철이 확보했다. ‘US스틸’이라는 사명도 그대로 유지하고, 최고경영자(CEO)에는 미국인을 기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 2028년까지 11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까지 내놓으며, 트럼프의 체면을 살렸다. 단어 선택도 신중했다. ‘인수’ 대신 ‘파트너십’, ‘완전 자회사화’ 대신 ‘미국의 통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트럼프의 저서와 과거 발언을 연구하고, 그의 측근들과 접촉해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분석한 결과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미국과 일본 철강의 파트너십을 기념하기 위해 연설하고 있다. [AF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미국과 일본 철강의 파트너십을 기념하기 위해 연설하고 있다. [AFP]

세 번째 비결은 트럼프의 체면을 살려주면서도, 자신의 원칙은 결코 양보하지 않은 점이다. 하시모토는 ‘철의 협상가’라는 별명처럼 “숫자와 논리”로 내린 결론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는 “일본제철의 자본과 기술 없이는 US스틸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동시에 협상 상대의 자존심을 존중했다. 싸움과 배려, 강단과 유연함을 절묘하게 조율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시모토는 1년 반 동안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한때 세계 최고였던 일본제철을 다시 최고로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US스틸이 반드시 필요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

그의 집념은 결국 트럼프의 승인을 이끌어내며, 철강업계 판도를 뒤흔드는 인수전을 완성시켰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토록 US스틸 인수에 매달렸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철강 기술의 꽃으로 불리는 전기강판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제철에게, 미국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자, 변압기 수요가 높은 나라다. 풍부한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그린수소 경쟁력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탈탄소 시대에 철강 경쟁력은 환원제 공급에 달려 있는데, 미국은 이 조건을 완벽히 갖춘 국가다. 하시모토는 이 점을 간파했다.

가난과 열등감 딛고 일어선 ‘히토요시의 조조’…승부욕과 야심가 기질

하시모토는 1955년 구마모토현 히토요시(人吉市)에서 태어났다. 농촌 출신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초등학교 시절에는 신발조차 신어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그는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고 되뇌며 열등감을 에너지로 삼았다.

하시모토는 중학생 시절 두각을 드러냈다. 특히 영어에 강한 열정을 보였다. “영어가 앞으로 세계 공용어가 될 것”이라는 교사의 말이 큰 자극이 됐다. 그는 영어를 잘하면 미국과도 맞설 수 있다고 믿었다.

중학교에서 그는 평생 친구인 시부야 코이치와 공부로 늘 경쟁했는데, 가난한 농촌 집안 출신인 자신과 달리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를 부러워하면서도 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하시모토는 중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 시부야의 집에 찾아가 그의 어머니에게 “첫 시험에서 제가 2등을 했고, 시부야 군이 1등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녀석 집을 보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오기와 승부욕은 어린 시절에도 매우 강했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은 고등학교에도 함께 진학했다. 그들의 담임교사였던 니시지마 카즈오는 다툼을 싫어하고 온화한 시부야를 삼국지의 유비 현덕에, 야심가였던 하시모토를 조조 맹덕에 비유했다. ‘히토요시의 조조’라는 별명은 그렇게 생겨났다.

입사 40년 만에 사장 취임…3년 만에 일본제철 탈바꿈시킨 동력은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이 지난 6월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유튜브 @Nippon Television News 갈무리]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이 지난 6월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설하고 있다. [유튜브 @Nippon Television News 갈무리]

하시모토는 당시 진학하고 싶어했던 명문 히토츠바시대학 상학부를 1979년 졸업했고, 같은 해 일본제철에 입사했다. 그는 본래 희망하던 상사(商社)에 합격했지만, 그 후 견학한 제철소에서 “철강 산업은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그는 전통파(도쿄대 금속공학과)가 아니었고, 또 입사 초기에는 직언하는 성격 탓에 상사와 갈등을 자주 빚었다. 이로 인해 40세 무렵 조직 내 비주류 부서인 해외 영업 부서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그는 글로벌 감각과 전략적 안목을 키울 수 있게 됐다. 하시모토는 이후 경영진에 올라 미국 사업에 강한 꿈을 품게 됐다.

2019년 사장에 취임한 그는 대대적 구조조정으로 일본제철을 3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그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고정비 혁신과 자동차 강판 가격 인상이었다. 제조업 분야에서 고정비 절감과 판매가 인상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건 쉽지 않다. 고정비 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그는 생산능력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모든 비효율의 근원인 잉여 생산 능력 개선에 나선 것이다.

일본 내 6개 제철소의 생산 제품과 시장을 분석해서 고로 15기를 10기로 줄여 조강 생산능력을 20%나 줄였다. 열연·도금 표면처리 등 휴·폐지한 설비는 6개 제철소의 총 32라인에 달했다. 그 결과 2020년 결산에서 약 2조2300억원을 절감했고, 2022년 결산에서는 추가로 9000억원을 줄였다.

일본제철 로고. [로이터]
일본제철 로고. [로이터]

하시모토는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결단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는 20년 넘게 이어진 ‘선(先) 출하, 후(後) 정산’ 방식의 문제점을 포착했고, 2021년 도요타를 비롯한 대형 자동차 회사와 교섭에서 ‘선(先) 가격 책정, 후(後) 출하’ 방식으로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주요 자동차 회사의 세부 조달 리스트를 파악하고, 일본 국내외 철강회사의 공급 여건도 정밀하게 분석했다.

협상 위해선 싸움도 마다 않는다…‘철의 협상가’ 하시모토

하시모토는 백전노장의 협상가, 즉 ‘철의 교섭인’으로 불린다. 하시모토의 이름을 업계에 각인시킨 사건은 2014년 브라질 우지미나스 경영권을 둘러싼 아르헨티나 기업과의 분쟁이었다. 3년 반의 치열한 공방 끝에 합의에 도달했지만, 그 과정에서 괴전화에 시달리고 숙소를 전전해야 했다. “통역에 의존하면 상대가 우습게 본다”며 싸움을 위해 영어까지 익혔다.

2019년 인도 제철소인 구(舊) 에사르 스틸(Essar Steel) 인수 때도 채권자들 간의 분쟁으로 소송이 장기화됐다. 최종 인수까지 2년 가까이 걸렸지만, 그는 특유의 끈질김으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한편, 2021년에는 도요타와도 정면으로 맞붙었다. 일본 대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요타를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그는 도요타가 자동차용 전자강판 특허를 침해했다며, 중국 바오우 철강그룹의 자회사와 미쓰이물산까지 동시에 고소했다. 이렇게 정보를 분석하고 상대의 약점을 파악한 뒤 2021년 5월 ‘가격 인상 없이는 공급도 없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부품이 하나라도 부족하면 자동차 제조사에서는 차를 완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레버리지로 적극 활용했고, 원하는 교섭을 이끌어 나갔다.

하시모토는 상대가 도요타든, 심지어 대통령이든 변하지 않는 일관된 신념을 갖고 있었다. 하시모토는 상대가 누구든 “정당한 비즈니스를 부당한 이유로 방해받는다면 맞서 싸운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밝히면서도 “소송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좌우명은 ‘사상마련’…하시모토의 협상 철학은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이 지난 1월 일본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EPA]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이 지난 1월 일본 도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EPA]

하시모토의 좌우명은 ‘사상마련(事上磨錬)’이다. 행동과 실천을 통해서만 지식과 정신이 단련된다는 뜻이다. 그는 “침묵은 금”이라는 태도를 따르지 않는다. 부당한 공격이나 가짜뉴스에도 논리와 데이터로 맞서 싸운다.

하시모토식 협상술은 일본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도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하시모토는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할 일은 꿈과 선택지를 남겨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철강업계 재편 흐름을 간파한 일본제철은 안으로는 혁신으로 체질을 강화하고, 밖으로는 US스틸 인수라는 공격적 전략을 택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히토요시의 조조’라 불리던 소년이 반세기 만에 세계 철강업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주역이 된 것이다. 그의 승부욕, 논리, 실천은 앞으로도 철강업계뿐 아니라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십의 교본으로 남을 것이다.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 걸어온 길
하시모토 에이지 일본제철 회장 걸어온 길

mokiya@heraldcorp.com